漢文 文法

한문문법 16 - 허자(虛字)의 용법 ⑯ 내(乃)

bindol 2021. 9. 23. 11:40

1. 내(乃)字는 (옛말에는「迺」字로 쓰기도 하였음) 指稱詞와 副詞의 두 가지 用法으로 쓰인다. 副詞로 쓰일 경수는 때때로 句文을 連接하는 作用을 함으로써 連接關係詞와 類似하게 된다. 내(乃)字 指稱詞로 쓰일 경우는 「너의」(your)라는 意味이다. 이에 대한例로,

예1) 必欲翁, 幸分我一杯

반드시 너의 늙은이를 삶아먹으러 한다면, 나에게도 한 그릇의 국을 나누어 주면 다행스럽겠다.

예2) 吾弟在家, 一一成禮, 使兄得一意報國, 此情此義, 生死不敢忘也。

나의 동생들이 집에서 일일이 예를 갖추어 네 兄으로 하여금 한결같이 國家에 보답하게 하니, 이 情義는 죽으나 사나 감히 잊을 수 없다.

2. 내(乃)字가 副詞로 쓰일 때 가장 一般的인 意味는「於是」, 혹은「然

後」이다. 즉, 「곧」, 「이것이 바로」, 「그한 뒤에」라는 뜻으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 예로.

예3) 人智旣進,有科學。

人智가 이미 進步되면, 곧 科學이 있다.

예4) 自審終不得卒業, 遁去。

스스로 끝내 卒業할 수 없음을 알자, 곧 숨어 버렀다.

예5) 故責己承而責人輕,不失平等之眞意。

그러므로, 自己를 엄중히 꾸짖고 他人을 輕微히 責하여야만, 이것이 바로 平等의 참뜻을 잃지 않음이다.

예6) 有此母有此子。

이러한 어머니가 있은 그민 뒤에 바로 이러한 아들이 있다.

古書에서는 내(乃)字 「而後」나 「然後」와 合하여 쓰이는 경우가 있다. 예로.

예7) 而後今將圖南。

이후에 바로 이제 南쪽을 圖謀하리라.

예8) 天下分裂, 數世然後定。

天下가 分裂되어 數世가 지난뒤에 安定되었다.

3. 副言司로서 내(乃)字의 다음 用法은「그러나」,「도리어」,「오히려」, 「마침내」등의 뜻과 비슷하게 쓰인다. 여기에는 「意外」라는 뜻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 意外의 表示는 때로 아주弱化되어 나타나서, 거의 아무 意味도 

表示하고 있지 않게 보이는 수가 있다. 예로,

예9) 人類有同情也, 而或者致人於不快以爲快。

人類는 똑같은感情을 가지고 있다.그러 나,或者는 도리어 不快하게 사람을 만드는 것을 愉快하게 생각한다.

예10) 孺人不憂鹽米, 勞苦若不謀夕。

孺人은 소금이나 쌀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勞苦는 마치 저녁을 꾀하지 못할둘 하였다.

예11) 約共患難, 相委棄。

서로 患難을 같이 하기로 약속하였으나, 오히려 서로 버려둔다. 

예12) 當改過自新, 益驕溢。

잘못을 고치고 스스로 새로워 져야 하거늘, 도리어 더욱 교만이 넘쳤다,

예13) 千金之家, 比一都之君, 萬金者, 與王者同樂。

千金을 가진 사람이 한 고을의 임금과 비교된다면, 萬金을 가진 者는 결국(마침내)王者와 더불어 同樂하리라.

예14) 有此兒!

嚴挺之가 이런 아들이 있다니 !

예15) 有無母之人, 天乎! 痛哉!

세상에는 어머니 없는 사람이 있다지만. 하늘이여 ! 哀痛하도다!

위의 例文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내(乃)字와 「而」字는 合用되는 경수가 있으며, 이때는 轉折의 意味가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그 다음 上下句 中間에 쓰인 내(乃)字는 대부분 上句에서부터 下句에 이르는 內容의 關系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끝에 예14) 예15) 例文의 내(乃)字 表面上의 內容과 心中의 內容이 相反되는 경우라 하겠다. 즉嚴挺之라는 사람에게 이런 아들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안했는데 이런 아들이 있다니라는 뜻의表現이고, 다음은 세상에 어머니 없는 사람은 대단히 많이 있는 일로써 이상할 것은 아니지만, 이 글의 作者는自己의 感情으로는 어머니가 없는 것을 認定하지 않고 있는 경우인 것이다.

4. 또한 내(乃)字 (바로 …이다)처럼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때 역시 副詞인 것이다. 예로,

예16) 一代奇書, 不可謂尋常武俠小說也。

水滸傳는 바로 一代 奇書이므로, 尋常한 武俠小說이라 이를 수는 없다.

예17) 臣非知君, 知君蘇君。

臣이 그대를 아는 게 아니라, 그대를 아는 것은 바로 蘇君이다.

예18) 至拜大將, 韓信也, -軍皆警0

大將을 拜受한 자가 바로 韓信이라는 데에 이르러서는, 一軍이 모두 놀랬다.

예19) 今拜大將, 如呼小兒耳, 此信所以去也。

이제大將의 벼슬을 받았는데도 어린 아이를 부르듯 할 뿐이므로, 이것이 바로韓信이 떠난 까닭이다.

예20) 夫人所以貴者, 此男耳。

夫人이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바로 이 男子가 있기 때문일 뿐이다.

예21) 官吏畏事, 故爲此說. 非眞有其事。

이것이 바로 官吏가 두려워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說을 주장하는 것이지, 참으로 그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위의 앞 예16) 예17) 예18) 例는普通 判斷句文이다. 뒤 예19) 예20) 예21) 例는原因을 해석하는 內容으로 그 중의 두 例는「所以」(「以」字의用法(7)項)를 利用하였고 마지막 예는 그것을 쓰지는 한했다.

이러한 내(乃)字는 普通 動詞와 같은 系列로 歸屬지켜 「擊詞」로 看做하여 「爲」字다 「是」字와 같은 部類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내(乃)字는 역시 副詞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내(乃)字가 繫詞처럼 보일 때도「이것은 바로 …이다.」(this is just …)라는 뜻으로 「바로」(just)는 意味가 强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이 副詞이기 때문에 바로 앞에 杏定詞가 오지 못한다. 즉「不爲」(do not, is not)「不是」(is not) 하고는 쓸 수 있지만,「不乃」나「未乃」라고는 쓸 수 없다.

(5) 다음 내(乃)字가 다른 글자와 合用되는例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乃至」 「以至」와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 예로,

예22) 經史傳, 百家諸子之書, 乃至難經, 素問, 本草, 諸小說, 無所不讀。

여러經史傳, 諸子百家書에서부터 難經, 素問, 本草, 諸小說에 이르기까지 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예23) 假歐化之美名, 盡驕奢之能事, 乃至飮食之奉, 器玩之微, 無不求之異域以爲快。

西歐化의 美名을 빌어 교만하고 사치한 일을 能事로 여기고, 飮食을 떠받들고 그릇을 완상하는 微細한 일에 이르기까지, 이들을 異域에서 찾아 유쾌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다.

 「乃若」이나 「若乃」「至於」와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내(乃)字 가벼운 「그러나」의 뜻이 있지만, 여전히 내(乃)字 3項과 같은 用法인 것이다. 예로,

예24) 是故君子有終身之憂, 無一朝之患也。乃若所憂, 則有之。

그러므로 君子는 終身의 근심은 있을지민정, 一朝의 근심은 없다. 그러나 근심하는 것은 있다.

예25) 若乃不盡義務而惟他人義務之産業以爲權利, 是謂倚賴。

만약 義務를 다하지 않고 오직 他人의 義務에서 얻어진 結果를 가지고 權利로 이ㄱ여긴다면, 이것은 倚賴(의지하여 빌붙음)라고 한다.

위에서 「乃若」은 「근심」하는 것에 이르러, 즉「근심하는 것만 가지고 논한다면」의 뜻이고, 다음 「若乃」는 「他人이 義務를 다하여 이루어 놓은業務을 가지고 自己의 權利를 주장하게 된다면」,「주강하게까지 된다면」의 뜻인 것이다.

 「毋乃](或은 「無乃」)는「아마도」,「아마」의 뜻이다. 이것은 以上에서 설명한 내(乃)字의 用法과는關係가 없는 例라 하겠다. 「毋乃」를 쓰는 句文은 대부분 推測을 나타내는 疑問句文이다. 예로,

예26) 得一城而失信於民, 毋乃不可乎?

一城을 얻고 백성에게 信望을 잃는다면 아마도 不可하치 않을까?

예27) 今君德無乃猶有所?

지금 임금의 德은 아마 도리어 不足한 데가 있지 않을까?

예28) 有目而不能見, 有耳而不能聞, 毋乃甚可悲矣乎?

눈이 있어도 볼 수가 없고,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다면, 아마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上例에거 보는 바와 같이 「毋乃」가 들어 있는 句文은 비록 否定文은 아날닐라도, 우리말로 번역되어질 때는 否定的인 語氣가 나타난다. 이것은 「아마 아니 겠는가?」(afraid ~ not)의 뜻과 같다.

출처 : 신아사출판 홍인표저 한문문법(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