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文 文法

한문문법 15 - 허자(虛字)의 용법 ⑮ 차(且)

bindol 2021. 9. 23. 11:38

1. 차(且)자의 用法으로는 副詞일 경우와 連接關係詞일 경우의 두 가지가 있다. 副詞일 경우에 가장 뚜렷한 意味는 「將」, 「要」(도(또) ~하러 한다) 등이다. 예로,

예1) 入, 大風起, 砂礫擊面。

해도 지러 하는데, 큰 바람이 일어서서, 돌맹이가 일굴올 때민다.

예2) 汝可疾去矣, 不去, 

너는 속히 가는 것이 좋다. 가지 않으면 또 잡히리라.

예3) 不國, 尙何暇詬誶傾軋乎?

나라도 나라꼴이 아날텐데, 하물며 어느 겨를에 혈뜯고 으르렁댄단 말인가?

예4) 我非忘諸君功也, 今固圖之。

내가 여러분의 공을 잊은 게 아니다. 이제 진실로 이를 도모하려 한다.

이러한 차(且)자 數量詞에 活用되면, 「幾及」(거의~까지 이른다)라는 뜻 된다. 예로,

예5) 居官未三年, 積資千萬, 是尙得謂之廉乎?

벼슬살이 三年이 못되어 資産 蓄貰을 거의 千萬石까지 이르니, 이것도 오히러 淸廉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예6) 匌奴頗殺人民, 婦女弱小, 千入。

흉노들이 人民들을 대단히 殺하고, 婦女子와 弱小者들을 毆打함이 거의 千人에가지 이른다.

2. 차(且)자의 두번 째 用法은 「暫且」(잠시)라는 意味로 쓰이는 것이다. 예로,

예7) 民勞, 未可, 待之。

백성들이 피로하니 그럴 수 없다. 잠시 이를 기다리자.

예8) 息內爭, 以禦外侮。

잠시 집안 싸움을 멈추고, 바깥 受侮을 막자.

예9) 我醉欲眠, 卿去。

내 술이 취하여 자러 하니, 그대는 잠시 나가라.

예10) 試言之, 成否未敢必也。

잠시 시험하여 이를 말한 것이니, 成功與否는 반드시 기약할 수 없다.

이러한 차(且)자 命令句나 請誘文에 많이 쓰인다. 따라서 二人稱일 경우가 가장 많고, 一人稱이나 三人稱의 경우에 쓰이는 例는 아주 드들다.

3. 차(且)자의 세번째 用法은 「尙且」(오히러 ~까지도)의 뜻으로 쓰이는 것이다. 예로,

예11) 臣死不避, 酒安足辭?

臣은 죽음까지도 피하기 않을민데, 자술을 어찌 족히 사양하리으?

예12) 不識, 何足言文?

글자까지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족히 文章을 말하리오.

예13) 明日未可知, 況明年乎?

내일도 알 수 없는 것을, 하물며 明年이리요?

예14) 禽獸相殘, 惡之, 況人相殺乎?

새나 짐승이 서로 잡아먹는 것까지도 미워하거늘, 하물며 사람과 사람이 서로 죽이는 것에 있어서랴?

여기서 차(且)자는 本質的으로는 여전히 副詞라 하겠지만, 확실히 連接關係詞의 作用을 兼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況」字와 上下에서 呼應하여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句論 下句에 「況」字를 쓰든 안쓰든 그것은 反詰的인 句文임에 들림없다.

4. 차(且)자의 連接關係詞로서의 用法에 대하여 살며보기로 하자.

차(且)자는 主로 두개의 形容詞를 連接시키는 역할이 있다. 예로,

예15) 君子有酒, 旨多。

君子에게 술이 있으니, 맛도 좋고 많기도 한다.

예16) 明月照積雪, 北風哀。

明月이 積雪에 비추는데, 北風은 세차고 애처롭다.

예17) 邦有道, 貧賤焉, 恥也。邦無道, 富貴焉, 恥也。

나라에 道가 있는데, 가난하고 은 수치요, 나라에 道가 없는데 富하

고 貴함은 수치다.

위와 같은 句文에는 「而」字을 사용할 수도 있다. 즉 「貧而賤」, 「富而貴」라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而」字의 作用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順接이거나 逆接일 경우를 莫論하고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만, 차(且)자 단지 順接일 경우에만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두개의 形容詞는 마드시 同一한 性質의 內容이어야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貧而貴」, 「富而賤」이라고는 쓸 수 있지만, 「貧且貴」, 「富且賤」 이라고는 쓸 수가 없다. 이러한 用法의 차(且)자 자주「旣」字와 같이 聯用된다. 예로,

예18) 旣醉飽 ; 旣盲啞。

술도 취했고 배도 부르다. 눈도 멀었고 벙어리도 되었다

예19) 喪亂旣平, 旣安寧。

난리가 이미 平征되자, 편한하고 조용했다.

차(且)자는「旣」字와 聯用되든, 홀로 쓰이든 平等한 關係의 두 形容詞를 

連接시키는 것이다. 여기서「旣」字나 차(且)자는 다같이「또」라는 意味가 內包되어 있음이 사실이다.

5. 平列的인 두개의 動詞를 連接시킬 때는 通常 「而」字를 사용한다. (「而」字의用法(1) (2) (3)項참조) 만약 차(且)자를 사용하였다면, 이때는 同時的인 意味가 强調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한편으로는~」라는 뜻 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로,

예20) 險道傾, 射。

험악한 길이 몹씨 기울어져, 한편으로 치달리며 한편으로 쏜다.

예21) 飮, 旁若無人。

한편으로는 노래하며 한편으로는 술을 마셔, 옆에 마치 아무도 없는 듯 하

다.

예22) 高祖見信死, 憐之。

高祖는 韓信이 죽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 기뻐하며 한편으로는 불쌍히 여겼다.

간혹 차(且)자 單獨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예로

예23) 憑几口占書吏, 省官事。

책상 모서리에 의지하여 書吏를 점검하면서 관청 일을 살폈다.

예24) 百工之事不可耕爲也。

여러 工人의 일은 진실로 농사를 지으면서 할 수는 없다.

6. 두개의 小句文이 차(且)자로 連妾되었을 때는 一種의 選擇性의 疑問句가 된다. 예로,

예25) 富貴者驕人乎? 貧賤者驕人乎?

富貴한 사람이 사람에게 교만하는가 ? 아니명 貧賤者가 사람에게 교만하는가?

예26) 足下欲助秦攻諸侯乎? 欲率諸侯破秦也?

그대는 秦를 도와서 제후를 공격하려는가? 아니면 제후를 거느리고秦을 쳐부수려 는가 ?

예27) 君以爲敵之不進爲畏我耶? 有所待也?

그대는 적이 나를 두리워서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기다리는 바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가?

위에서 쓰인 차(且)자는「抑」字와 똑 같다. 즉「아니면」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富貴者驕人乎? 抑貧賤者驕人乎?」라는表現은 上記첫째例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 다.

7. 以上에서 나타난 連接關係詞로서의 차(且)자는 (4·5·6項) 비록用法은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連接하는 두 가지 部分은 平等한 內容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바꾸어 쓰더라도 상관이 없다. 예로,「富且貴」로 쓰거나,「貴且富」로 쓰거나,「且醉且飽」로 쓰거나「且飽且醉」로 쓰거나「貧賤者驕人乎? 且富貴者驕人乎?」로 쓰거나,「富貴者驕人乎? 且貧賤者驕人乎?」라고 쓰거나 意味上의 變化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前後가 서로 不平等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민,

예28) 公語之故, 告之悔。

公은 이에 대한 까닭도 말하였고, 나아가 이에 대한 뉘우침도 고백하였다.

예29) 亂次以濟, 遂無次, 不設備。

亂은 차례로 가라앉아서, 드디어 차례가 없게 되었고, 나아가 대비하지도 안했다.

예30) 使吾人之身散而爲各各官體, 又或散而爲各各之細胞, 則亦焉能有世聽行動之作用哉?

우리들의 身體를 解散시켜서 各各의 器官으로 만들고, 또 혹 더 나아가 解散시켜서各各의 細胞로 만들면, 또한 어찌 視聽하고 作動할 수 있는 作用이 있겠는가?

위에서 차(且)자는「나아기」「더 나아가」의 뜻으로 쓰였다. 이것은上下兩句에 層次가 있거나 先後를 나눌 수 있는 경우이다. 또한차(且)자는 특히 理由를 나타내는 句文에서는 「더 나아가」라는 뜻이 드러난다. 예로,

예31) 以君避臣, 辱也。楚師老矣, 何故退?

임금으로서 신하를 피하는 것은 모욕이다. 더 나아가 楚師는 늙었다. 무슨 까닭으로 피하는가 ?

예32) 曹操之衆, 遠來疲乏, 北方之人, 不習水戰。

曹操의 무리는 별리 와서 피로해 있다. 더 나아가 北方人들은 水戰에 익숙하지 못하다.

예33) 邀之未必來, 來亦何濟於事?

마지해 오더라도 반드시 오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온다 하더라도 일에 대하여 무슨 처리를 하겠는가?

8. 끝으로, 어느 句文에 있어서는 차(且)자 어떤 事實을 다시 提起하는 連接關係詞로서 사용된다. 그러나 이때의 차(且)자도 上文과 連結되는 氣分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上文이 이미段落이 끝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表面上으로 連接關係가 없는 것에 不過하다. 이때의 차(且)자 「다시 말하면」혹은 「또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등이 된다.

예34) (上言求卜之誤。)君侯何不思昔者也? 有昔者必有今日。

(위에서求卜의 잘못을 말함)다시 말하면 君侯가 어찌 옛것을 생각하지 않겠느냐? 옛것에도 반드시 오늘날의 것이 있다.

예35) (上言己所不欲, 勿施於人)積極之行爲, 孔子固亦言 之, 曰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위에서 自己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라고 말함)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적극적인 행위는 孔子도 진실로 또한 이를 言及하셨으니, 즉, 「自己가 立身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을 立身시키고, 自己가 영달하려고 한다면, 다른 사라을 영달시킨다」고 하셨다.

예36) (上言酋長之威與神之威, 俱不能使人不爲惡)君主也, 官吏也, 敎主也, 輒利用酋長之威及神之威以强人去善而爲惡 … 於是乎威者, 不但無成效, 而且有流弊。

(위에서 酋長의 威嚴과 神의 威嚴이 모두 사람들을 惡하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함) 다지 말하면 君主나 官吏나 敎主도 문득 酋長의 威嚴과 神의 威嚴을 利用하여 사람들에게 善을 버리고 惡을 행하라고 强要한다면 … 여기서 威嚴이란 것은 아무 效力을 나타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流弊를 끼치게 된다.

출처 : 신아사출판 홍인표저 한문문법(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