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00] 일본 육군과 해군의 영어 교육
입력 2021.10.01 03:00
일본 해군 제독 이노우에 시게요시(1889~1975). 영어를 ‘적성어(敵性語)'라 부르며 적대시하던 일제 말기, "자국어밖에 모르는 해군 장교는 쓸모없다"며 해군의 영어 교육을 지켜낸 인물이다. /위키피디아
1940년대 들어 일본 사회에는 ‘적성어(敵性語)’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한다. 미·영과의 전운이 감돌면서 영어가 적성어의 대명사가 되었고, 영어를 쓰지도 배우지도 말자는 사회 분위기가 고조된다. 그전까지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취급되던 영어가 상급 학교 입시 과목에서 제외되고 중등학교에서도 필수 과목이 아닌 선택 과목으로 조정되면서 학교 영어 교육이 위축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영어를 배우고 싶은 학생은 몰래 숨어서 공부해야 하는 광기 어린 시대상이었다.
전쟁 시기였던 만큼 영어 교육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군대였다. 육군은 간부 양성소인 육군사관학교와 육군유년학교의 입시 과목에서 영어를 배제하는 등 의도적으로 영어 교육을 축소하였다. 전국에 6개가 있던 육군유년학교 중 영어를 가르치는 학교는 2개에 불과하였다. 이전부터 독일, 러시아, 프랑스 유학파가 득세하던 육군에는 영어를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간부가 드물었다. 미·영에 대해 가장 무지한 조직이 육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해군은 이와는 대조적이었다. 간부 양성소인 해군병학교 입시를 위해서는 반드시 영어를 공부해야 했고, 입학한 다음에도 전 학년에 걸쳐 영어가 중요 과목으로 교습되었다. 전황이 급박해지던 1943년 당시 교장이던 이노우에 시게요시(井上成美) 제독은 안팎에서 영어 교육 축소 압력이 가해지자, “자국어밖에 모르는 해군 장교는 쓸모없는 해군”이라며 일축하고 영어 교습을 더욱 강화한 일화로 알려져 있다. 해외를 오가며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해군의 특성상 국제적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육군보다 높았다고 할 수 있다.
태평양전쟁과 관련해서는 육군이 대미(對美) 개전을 주도했고 해군은 그나마 신중한 입장이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상대를 알려 하지 않고 대결 의식만 앞선 우물 안 개구리가 국가 정책 주도 세력이 될 경우 어떠한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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