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 병드니 /황량한 들녘 저편을 /꿈은 헤매는 도다
일본의 시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1644∼1694)가 임종 나흘 전에 지은 마지막 하이쿠다. ‘여즉인생(旅卽人生)’이라던 그는 인생을 시간여행에 비유하곤 했다. 1689년 제자 소라(曾長)와 함께 에도(江戶·현 도쿄)를 떠나 동북지방인 ‘오쿠(奧)’로 떠나면서 ‘먼 변경의 하늘 아래서 백발이 될 만큼 고생하더라도, 직접 본 적이 없는 명소와 유적지를 돌아본 다음, 살아 돌아온다면 뭘 더 바랄 게 있으리’라는 각오로 나그넷길에 올랐다. 그는 여러 지방에서 만난 문인들과 하이쿠 문학의 장을 마련하고 자신이 지향하는 하이쿠의 시적 세계를 전파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가 ‘오쿠로 가는 작은 길’(奧の細道)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이렇게 밝힌다.
“해와 달은 영원한 여행객이고, 오고 가는 해(年) 또한 나그네다. 사공이 돼 배 위에서 평생을 보내거나, 마부가 돼 말 머리를 붙잡은 채 노경을 맞는 사람은, 그날그날이 여행이기에 여행을 거처로 삼는다. 옛 선인 중에도 많은 풍류인이 여행길에서 죽음을 맞았다. (…)”
그가 흠모해 마지않았던 중국의 시인 이백이나 두보, 일본의 유명 와카 시인 사이교(西行) 법사와 렌가(連歌) 지도자 소기(宗祇)도 객사를 면치 못했다. 시인 랭보와 에드거 앨런 포, 톨스토이 역시 나그넷길에서 숨졌다. 바쇼도 여행길(오사카)에 쉰 살로 생을 마감했다. 죽기 얼마 전 “이번 가을은 /어찌 이리 늙었나 /구름 속의 새”라고 읊었다. 병든 몸으로 표박(漂泊)을 일삼아온 구름 속의 새는 그 자신일 것이다. 여행 중 지병으로 탈진한 상태라 제자에게 받아 적게 했다. “旅に病んで 夢は 枯野をかけ廻る.” 황량한 벌판에 핏빛 노을이 번지는데, 그곳에 혼자 서 있으면 나는 바쇼의 풍경 안으로 흡수되고 만다. 가을 들녘을 헤매는 유혼(遊魂)처럼, 시계(視界)가 아득해지는 것이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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