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파청산경색유(一派靑山景色幽)요
전인전토후인수(前人田土後人收)라
후인수득막환희(後人收得莫歡喜)하라
갱유수인재후두(更有收人在後頭)니라
한 줄기 청산의 경치 그윽하도다.
앞사람이 가꾸던 밭을 뒷사람이 거두는구나.
뒷사람아! 얻었다고 기뻐하지 말라.
다시 차지할 사람, (바로) 네 머리 뒤에 있느니라.
‘명심보감’에 실린 작자 미상의 이 시구는 ‘在後頭’로 언제나 나를 명심시킨다.
“바로 네 뒤에 있느니라”.
이 죽비가 이따금씩 내 안에서 발동하면 손에 든 것들을 슬그머니 내려놓게 된다.
눈앞에 펼쳐진 유구한 청산은 그대로요,
우리는 무대의 등장 인물처럼 그냥 지나갈 뿐이다.
소유권이 있더라도 청산을 떠메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때에 맞게 물러남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고령에 들어 지체하는 이 몸도 폐스럽게 생각된다.
20년 전 11월 하순, 나는 소원하던 도연명의 태 자리를 찾았다.
구강(九江)시의 심양(심陽), 진(晋)나라 때는 이곳을 ‘시상(柴桑)’이라 불렀다.
그가 평택령 자리를 박차고 시상교를 건너 집으로 돌아와 ‘귀거래사’를 썼다는
그 시상교를 건너 도씨(陶氏) 집성촌으로 들어섰다.
민가는 퇴락하고 추색 짙은 잡초 속에 붉은 벽돌집만 띄엄띄엄.
뜨개질하는 아낙에게 물으니 여기가 진짜 도연명의 고장이라고 한다.
머리를 들어 아득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은 1600여 년 전과 그대로이려니 하고 그 태고의 정적 속에다 선생의 시
‘귀원전거 기일(其一)’을 현장에 내려놓는다.
‘반듯한 300여 평 대지에 조촐한 여덟, 아홉 칸의 초가집./
뒤뜰의 느릅과 버들은 그늘지어 처마를 시원히 덮고/ (…)
깊은 골목 안에 개 짖는 소리 들리고/
뽕나무 가지에는 닭이 운다’.
밥 짓는 매캐한 연기도, 컹컹 개 짖는 소리도 나는 듯했다.
눈을 뜨니 텅 빈 들판, 바람만이 지나가고 있었다.
시인은 가고 없고, 여산의 만추는 그대로 아름다웠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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