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난자의 한줄로 고전

행복한 왕자

bindol 2021. 10. 24. 04:27

어느 도시에 하늘 높이 솟은 받침대에 ‘행복한 왕자’ 동상이 있었다. 동상은 반짝거리는 금박으로 아름답게 장식돼 있었다. 눈에는 사파이어가, 칼자루에는 큼직한 루비가 붉은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극작가,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동화집 두 권은 아직도 빛을 발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대표적인 동화 ‘행복한 왕자’의 서두다. 젊은 나이에 죽은 왕자는 도시에 금빛 동상으로 세워졌다. 친구를 따라 이집트로 가지 못한 작은 제비 한 마리가 행복한 왕자의 두 발 사이에 내려앉았다. 잠을 청하려던 순간, 큰 물방울 하나가 제비의 머리 위로 뚝 떨어졌다. 세 번째 물방울이 떨어졌다. “당신은 누구시죠?” “나는 행복한 왕자란다. 나를 돌보는 궁중의 신하들은 나를 ‘행복한 왕자님’이라고 불렀단다. 지금 이토록 높은 곳에 있으니 도시의 비참하고 추한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내 심장은 납으로 만들어졌으니 이렇게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구나.”

제비는 왕자의 부탁으로 두 눈에 박힌 사파이어를 꺼내 가난한 희곡 작가와 성냥팔이 소녀에게 전달한다. 칼자루에 박힌 루비는 앓아누운 재봉사의 어린 아들에게 갖다 준다. 왕자가 앞을 볼 수 없게 되자 제비는 왕자에게 말한다. “저는 영원히 왕자님 곁에 머물 거랍니다.” “이제 도시 위로 날아가서 네 눈에 비친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게 전해주렴.”

 


제비는 큰 도시 위로 날아갔다. 부잣집 앞에 거지들과 핏기 잃은 아이들이 보였다. 야경꾼에게 쫓겨난 아이들은 비 내리는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왕자는 몸에 덮인 순금을 한 조각씩 떼어 나눠주도록 했다. 그의 몸은 칙칙한 회색으로 변했다. 제비는 겨울 추위를 버틸 수 없게 되자 왕자에게 작별을 고하고 그의 발치에서 숨을 거둔다. 가진 것 없으면서 이렇게 나눌 수 있다니, 작은 제비 한 마리의 헌신이 초라한 나를 돌아다보게 한다.

수필가

'맹난자의 한줄로 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표상은 본체가 아니다  (0) 2021.10.24
순간이 영원인 것처럼 살아야 한다  (0) 2021.10.24
맥베스  (0) 2021.10.24
재후두(在後頭)  (0) 2021.10.24
인생  (0) 2021.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