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정신은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요, 나타난 것은 일체의 의복이며 표상에 불과하다. 표상을 본체인 것처럼 망상할 때, 인류는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영국의 비평가 토머스 칼라일(1795∼1881)의 ‘의복철학’에서 만날 수 있는 글귀다. 서른여섯 살 되던 어느 여름날, 그는 특별한 체험을 경험한 뒤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내게 물었다. 도대체 네가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이냐? 왜 비겁하게 줄곧 울고 콧물을 흘리고 벌벌 떨면서 걷느냐, 덜된 인생아. 네 앞에 놓인 최악의 경우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죽음이냐? 그렇다고 하자. 지옥의 고통이나 악마의 고문이 네게 할 수 있는 전부겠지. 그런데 너는 그게 무엇이기에 이겨내지 못하고 비겁하게 쫓기고 있단 말인가. 생각해 보라. 네가 비록 쫓겨났다고는 하지만 너는 그래도 자유의 아들이 아니냐? 지옥 불이 너를 태워 버리기 전에 너는 네 발을 들어 지옥 불을 짓밟아 버릴 수는 없단 말이냐? 무엇이나 올 테면 오너라. 부딪쳐 보자꾸나. 그것이 지옥이건 악마건 맞서 보자꾸나.”
옷의 노예였던 인간이, 옷을 지배하는 인간으로 바뀌는 과정을 그는 ‘의복철학’에 적었다. 한마디로 그것은 자유의 지칭이었다. 칼라일은 몸과 마음을 훌훌 벗어버린 자기를 보고서야 비로소 생사(生死)와 유무(有無)에 끌려다니지 않는 자기를 붙잡게 됐노라고 토로했다.
“꺼져라. 거짓 희망의 그림자여! 나는 더 이상 너를 좇을 생각이 없다. 나는 너를 이제는 믿지 않겠다. 그리고 너희들 굶주린 공포의 유령들이여, 너희와도 인연을 끊겠다. 너희들도 모두 그림자의 거짓이다. 자, 나는 이제부터 좀 쉬어야겠다. 여행에 지치고 삶에 지쳤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 이제는 자야겠다. 죽건 살건 내게는 마찬가지다. 모두 아무 뜻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 소강절 선생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삶과 죽음은 보통 있는 일이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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