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지지가용야(老馬之智可用也).
늙은 말의 지혜를 써야 한다.
사기(史記)(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서 만난 글귀다. 전국(戰國)시대 말, 한(韓)나라 공족(公族)으로 태어난 한비자(韓非子)는 노자·순자(荀子)의 성악설을 계승한 법가(法家) 사상가로 중형론(重刑論)을 주장했다. 진(秦)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하자 암군인 한왕은 한비자를 진나라에 사자(使者)로 보냈다. 진시황은 그의 저서를 보고 몹시 감탄했으나 그와 동문수학한 이사(李斯)의 모함으로 한비자는 그곳에서 옥중자결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늙은 말의 지혜’는 ‘한비자 설림(說林)편’에도 나온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은 봄에 원정을 떠나 고죽국(孤竹國)을 치고 겨울에 돌아오는데 도중에서 눈이 내려 길을 잃었다. 위급한 이때 임금에게 아뢴 관중(管仲)의 말은 이것이었다.
“늙은 말의 지혜를 쓰십시오.” 병사들은 늙은 말을 풀었다. 나이 든 말은 고향길을 알고 있어 그 말이 앞서는 대로 뒤따르니 제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비자는 노마의 지혜를 성인의 지혜에 빗대고 있는데 나는 눈발을 헤치며 지친 군사들을 이끌고 묵묵히 고향길을 찾아가는 늙은 말에게서 옛날 고려장의 어머니가 떠오른다. 묵언의 행진, 소리꾼 장사익 씨가 외친 ‘꽃구경’ 가사가 눈앞에 한 장면으로 펼쳐진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하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고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더니/ 꽃구경 봄구경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씩 한 움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길을 잃고 헤맬까, 돌아갈 아들을 걱정하는 노모의 마음. 아이고머니나! 말을 삼키는 어머니! 노마(老馬)의 지혜에서 나는 왜 노모의 자애(慈愛)가 겹쳐오는지 모르겠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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