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의자(誠其意者)는 무자기야(毋自欺也)니
여오악취(如惡惡臭)하며 여호호색(如好好色)이
차지위자겸(此之謂自謙)이니
고(故)로 군자(君子)는 필신기독야(必愼其獨也)니라.
그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니,
악취는 싫어하고 좋은 경치를 좋아하듯이 하는 것,
이것을 자기 쾌족(快足)이라고 말한다.
고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 삼가야 한다.
‘대학’ 전6장의 말씀이다.
자기 양심을 속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선(善)은 천부(天賦)의 본연이니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자기가 진정한 자기일 텐데
때로는 외부 세력에 의해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좋아하는 척하고,
작은 이해득실에 양심을 어기고 불선(不善)에 찬성하기도 한다. 모두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다.
나는 38년 전 동양문화연구소에서 조준하 선생께
‘무자기(毋自欺)’와 ‘신기독(愼其獨)’을 배웠던 날의 충만감을 잊지 못한다.
내 좌우명이 된 게 바로 그때다.
하늘을 속이고 또 남을 속일 수는 있으나 어찌 자기를 속일 수 있으랴.
그 ‘무자기’의 실천을 위해 나는 ‘선불선’의 기로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
사계(沙溪) 김장생 선생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는 ‘무자기’는 내가 평생 힘써 온 바”라고 유고집에 썼다.
그뿐만이 아니라 퇴계 이황을 비롯, 조선의 많은 지식인도 ‘무자기’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위선을 경계하면서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자기 내부의 문제다.
그래서 주자는 ‘신기독’의 ‘獨’을 남이 알지 못하는 ‘내오(內奧)’한 곳이라 풀이했다.
의념(意念)의 최초 발단처로서 내면의 깊은 그곳이 선·악·정(正)·사(邪)의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다음 문장. ‘소인한거(小人閒居)에 위불선(爲不善)하되 무소부지(無所不至)’라.
이 사람도 한가할 때 슬며시 딴생각이 나면 이 말씀(무자기)을 경책으로 삼곤 한다. <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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