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난자의 한줄로 고전

나비의 꿈

bindol 2021. 10. 24. 05:01

부지(不知) 주지몽(周之夢) 위호접(爲胡蝶) 호접지몽(胡蝶之夢) 위주여(爲周與).

모르겠다.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된 건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나로 변한 건가.

주(周)는 장자의 이름이다. 그는 자신의 핵심사상인 ‘제물론(齊物論)’ 말미에 ‘나비의 꿈’ 이야기를 우화로 넣었다. 그런 만큼 그의 의도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장주와 나비가 꿈속에서, 또는 꿈 밖에서 알쏭달쏭하다. 언젠가 그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채, 유쾌하게 즐기면서도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깨어나 보니 틀림없는 장주가 아닌가? 도대체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됐을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일까?

장주는 꿈을 꾸다가 일어나 물화를 생각한다. 물화(物化)는 모든 존재하는 것은 다르게 있다는 말이다. 하나의 기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기 자기 기준 속에 자기로서 있음을 말한다. 호랑나비는 호랑나비로 있고, 장주는 장주로 있으면 그만이다. 누구의 꿈인지를 따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물화에는 가치척도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처럼 지금 그대로의 있음이지 비교와 판단의 구별로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존재 양상을 제물(齊物)이라고 한다. ‘제(齊)’는 다 살린다는 말이요, ‘물(物)’은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모든 것을 다 살려내는 제물, 여기에 장자 철학의 핵심이 있다. 한 소리도 죽이지 말고 모든 소리를 다 살려내는 것, 천뢰(天뢰)다. 삼라만상이 악기가 돼 모두 소리를 내지만 같은 소리란 하나도 없다. 제각기 다른 소리를 낸다. 그는 이런 자연의 음악을 ‘천뢰악’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호랑나비는 호랑나비로 있고 장주는 장주로 있으면 그만이다.

 


서두의 ‘부지(不知)’는 따지지 않겠다는 판단중지로 보인다. 시비와 분별에서 멀어진, 차별을 떠난 장주의 유토피아를 더듬어보게 된다.

수필가

'맹난자의 한줄로 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연부동(寂然不動)  (0) 2022.07.19
毋 自 欺  (0) 2021.10.24
늙은 말의 지혜  (0) 2021.10.24
여자의 뼈는 검고 가벼우니라  (0) 2021.10.24
마이너스에도 플러스가 있다  (0) 2021.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