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을 쓴 노자.
콤플렉스를 복권하고 마이너리티의 힘을 활용해 새로운 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건 ‘하이브리드(Hybrid)적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는 혼종(混種), 혼성(混成), 혼혈(混血)의 의미다. 서로 달라 보이던 것들을 ‘이종교배’함으로써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는 가장 전형적인 창의성 코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게 가능하기 위해선 ‘순수성’이라는 걸 거부해야 한다. 이는 ‘오리진(origin)’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다. 기원으로 보이는 것, 정통의 길을 걸어온 것, 그래서 모두에게 순수한 원형으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는 하이브리드적 방법론을 사용하기 힘들다. 인간의 정신세계가 가진 가장 순수한 오리진은 선과 악, 미와 추, 사랑과 증오 등이다. 이는 ‘선은 아름답고(곧 사랑해야 하고), 악은 추하다(그러니 증오해야 한다)’는 논리와 결합되면서 하나의 단단한 오리진을 형성하고 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해도 칭찬받을 만큼 선하지 말 것이며, 선하지 않더라도 욕을 먹지 않을 만큼만 선하지 않아야 한다.”
이 말 자체로는 과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선하지 않은 것인지, 그것이 악에 얼마나 다가가 있는지를 알기 어렵다. 선과 악이라는 가장 상징적인 오리진이 붕괴된 것이다.
‘서시빈목(西施빈目)’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중국 월(越)나라의 미인 서시(西施)가 가슴앓이를 해서 눈을 찌푸리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러자 추녀가 그게 아름답다고 생각해 자신도 얼굴을 찌푸리고 다녀 주변 사람을 경악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원래 이 고사성어는 무조건 남의 흉내를 내다가 웃음거리가 됨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로, 외형에 사로잡혀 본질을 망각하는 작태를 비난하는 뜻이었다. 하지만 ‘오리진과 그것의 붕괴’라는 차원에서 다시 해석해보면, 미와 추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준다. ‘추한 얼굴을 한 미녀’는 과연 추녀일까, 미녀일까.
오리진에만 경도되어 있다면 하이브리드적 방법론으로 생각하기 힘들다. 당신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오리진은 무엇인가. 그 오리진을 붕괴시키고 생각의 이종교배를 시작하라. 거기서부터 새로운 삶을 위한 당신만의 새로운 하이브리드적 방법론이 탄생할 것이다.
이남훈 경제 경영 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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