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신분 차별 있던 조선시대, '만민 평등' 외치던 천주교 금지했죠

bindol 2021. 11. 3. 19:22

 염수정 추기경은 한국인으로는 세 번째로 추기경에 임명되었어요. /최순호 기자여러분, 새로운 한국인 추기경(★)이 탄생했다는 소식 들었나요? 지난 12일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 추기경 19명을 임명했는데 그중에 염수정 서울대교구장이 포함되었거든요.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에 이어 세 번째 임명된 한국인 추기경이지요.

염 추기경은 뿌리 깊은 가톨릭 집안 출신이에요. 염 추기경의 4대조 염석태 할아버지와 김마리아 할머니는 1850년에 순교하셨지요. 순교(殉敎)란 모든 압력과 박해(★)를 물리치고 자기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말해요. 1850년에는 가톨릭, 즉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심해 지금처럼 자유롭게 믿을 수 없었어요.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해진 것은 1630년 무렵이었어요. 1603년에 중국에서 편찬된 '천주실의(★)'라는 책이 조선에 알려지면서 천주교도 함께 전해졌지요. 그 뒤 주로 남인(★) 학자들이 서양 학문과 문물을 연구하며 '천주실의'를 읽었고, 그 가운데서 천주교를 신앙으로 삼은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1784년 남인 학자였던 이승훈은 중국 베이징에서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한양으로 돌아와 이벽·권철신 등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1785년에는 중인(中人)인 김범우 집에 남인 학자 수십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기도 했어요.

이즈음 나라에서는 천주교를 사학(★)으로 규정하여 믿고 따르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는 천주교 교리는 중인·상인·여성 등 신분적 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을 당했던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고, 천주교 신자들은 계속해서 늘어났어요. 그러다가 정조 임금 때인 1791년 '진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전라도 진산(지금의 충남 금산 지역)에 살던 윤지충과 권상연이 양반 신분임에도 부모의 장례를 천주교 의식으로 치르고, 조상의 위패(★)를 불사른 것이에요. 이에 대한 비판이 들끓자 정조는 이들을 사형에 처했어요.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권력을 잡았던 사대부들은 천주교 신자들을 더 찾아내어 큰 벌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천주교 신자 중에 남인 세력이 많았기에 그들을 탄압하면서 자기들 세력을 더 키우겠다는 속셈이었어요. 또한 '만민 평등'을 주장하는 천주교 교리는 양반 중심의 신분 질서를 위협한다는 이유도 들었습니다.

 (사진 왼쪽)천주실의는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서 한문으로 편찬한 천주교 교리서예요. (사진 오른쪽) 전북 전주시에 있는 천주교 순교지예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로 꼽혀요.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문화재청 제공

정조 임금이 돌아가신 후 천주교 박해는 더욱 심해졌어요. 1801년의 신유박해, 1839년의 기해박해, 1846년의 병오박해, 1866년의 병인박해 등이 대표적이지요. 그러나 박해 속에서도 천주교를 믿는 신앙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1886년 맺은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선교의 자유가 허락되면서 천주교를 자유롭게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추기경(樞機卿): 가톨릭교회에서 교황 다음의 고위 성직자. 교황의 자유 결정에 따라 임명되며, 80세 미만 추기경은 교황 선출권을 행사함.

★박해(迫害): 못살게 굴어서 해롭게 함.

★천주실의(天主實義): 예수회 소속 이탈리아 신부 마테오 리치가 한문으로 쓴 천주교 교리서. 1603년 중국 베이징에서 처음 간행함.

★남인(南人): 조선 중기 이후 이황과 조식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당파인 동인(東人) 중 동인과 대립하던 서인에게 온건한 태도를 취하자는 의견을 지닌 세력.

★사학(邪學): 요사스럽고 간사한 학문. 조선 시대에 주자학에 반대되거나 위배되는 학문을 이르던 말.

★위패(位牌): 죽은 사람의 이름과 죽은 날짜를 적은 나무패. 죽은 사람의 혼을 대신하는 것으로 여김.

지호진 |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