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경의선 종착역 신의주,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했던 곳

bindol 2021. 11. 4. 04:13

며칠 전 '신의주 땅까지 중국에 파는 북한'(조선일보 3월 10일자 A1·5·6면 참조)이라는 깜짝 놀랄 만한 뉴스가 나왔어요. 북한이 중국 부동산 업자와 기업 등에 신의주 지역 땅을 팔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 소식을 듣고는 '신의주가 어떤 땅인데…'라는 생각이 들어 몹시 안타까웠답니다.

신의주(新義州)는 '새로운 의주'라는 뜻으로 근대에 새로 생긴 도시예요. 1905년에 일제가 경의선(京義線) 철도를 만들면서 의주부(府) 남서쪽 지역에 종착역을 만든 뒤 그 지역을 신의주라고 하였지요. 신의주는 1921년 평안북도의 도청 소재지가 된 이래, 평안북도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어요. 그렇다면 의주 지역은 우리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을까요?

"압록강 유역도 우리 땅인데, 여진이 그 중간을 점거하고 있어 요(★)와 교류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진을 내쫓고 우리의 옛 땅을 회복하여 거기에 성을 쌓고 길을 통하게 한다면 어찌 국교가 통하지 않겠는가." 이는 우리 역사상 최고의 외교관으로 꼽히는 고려의 문신 서희가 993년에 고려를 침략한 요나라 장수 소손녕과 외교담판을 벌이며 했던 말이에요. 그 뒤 고려가 '강동 6주'를 얻었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는 사실이지요. 강동 6주 중 가장 북쪽에 있던 흥화진이 바로 의주 땅이에요. 1018년엔 고려의 강감찬 장군이 소배압이 이끄는 요나라의 10만 대군을 흥화진에서 물리치기도 했지요.

 (위 사진)옛날 경의선 철도를 달리던 기관차예요. 6·25전쟁 때 폭격을 맞아 멈춰 섰대요. (아래 왼쪽 사진)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신의주역 모습이에요. /파주시 제공·위키피디아

고려 말,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위화도 회군'의 무대 역시 의주 지역이에요. 위화도는 지금의 신의주시(市)에 딸린 섬이거든요. 조선 시대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가 피란을 간 곳도 의주 땅이었고요.

70여년 전, 신의주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하나 더 일어났어요. 1945년 11월 18일, 신의주 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용암포의 구세학교에서 기독교사회민주당 지방대회가 열렸어요. 이곳에서 수산학교 4학년 재학생이 북한에 머물던 소련군과 공산당의 만행과 강압(★)적 통치를 규탄(★)했지요. 공산당이 정치훈련원으로 쓰고자 폐교 조치한 용암포수산기술학교도 복구하라고 요구했어요. 이때 모인 많은 군중도 함께 공산당을 규탄했습니다. 공산당이 보안대를 앞세워 이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반공을 외치던 1명이 사망하고, 많은 학생과 시민이 부상을 당했어요.

이 소식은 곧 신의주 학생들에게 알려졌고, 11월 23일 오후 2시에 신의주의 중등학교 학생 3500여명이 '공산당을 몰아내자' '소련군 물러가라' '학원에 자유를 달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가지를 행진했습니다. 이들을 진압하던 공산당과 소련군이 기관총 등을 발포해 학생 23명이 피살되고, 700여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2000여명의 학생과 시민이 옥에 갇혔지요. 이를 '신의주 반공학생사건' 또는 '신의주 학생의거'라고 불러요.

이처럼 압록강 어귀에서 중국과 국경을 마주한 의주·신의주 지역은 지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무척 중요한 지역이지만, 역사적으로도 우리에게 매우 의미 깊은 곳이랍니다.


★요(遼): 916년에 거란족의 야율아보기가 중국 북방에 세운 왕조. 1125년에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와 송나라의 협공을 받아 멸망함.

★강압(强壓): 강한 힘이나 권력으로 강제로 억누름.

★규탄(糾彈): 잘못이나 옳지 못한 일을 잡아내어 따지고 나무람.

지호진 |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