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고려 때 사심관·세종 때 토관(土官)… 지금의 향판제와 비슷하죠

bindol 2021. 11. 4. 04:15

 고려 태조는 향판제와 비슷한 사심관 제도를 시행했어요. /위키피디아

어느 기업 전 회장의 재판 판결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어요. 그 회장은 조세 포탈과 횡령죄를 저질러 2심 판결에서 징역형과 벌금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노역장에서 강제 노역을 하게 되는데 판사가 노역 일당을 무려 5억원으로 정한 것이에요. 판사가 피고인에게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고, 이는 곧 '향판(鄕判)'이라는 지역 법관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어요.

향판제는 판사가 전국 법원에서 순환 근무를 하지 않고, 지방 관할 법원 중 한 곳에 부임하여 퇴임할 때까지 근무하는 제도를 말해요. 대다수 법관이 수도권 지역 근무를 원해 수도권에 자리가 부족해지면서 도입된 제도이지요. 지역 사정에 밝은 해당 지역 출신 법관들이 재판함으로써 판결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요. 하지만 지역 유지(★)나 향판 출신 변호사들과의 친밀한 관계 때문에 '봐주기식(式)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큽니다. 그런데 판사와 달리 검사의 경우, 특정 고등학교나 지역 출신은 해당 지역 근무에서 제외된다고 해요. 즉, 검찰에서는 어떤 지방에 특별한 연고(★)가 있는 관리를 그 지방에 파견하지 않는 '향피(鄕避)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향피 제도와 비슷한 상피(相避) 제도가 있었어요. 상피 제도는 4촌 이내의 친족 관계에 있는 관리가 같은 관아에서 일하지 못하게 한 제도로, 조선시대에는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의정부·의금부·사헌부·사간원과 문·무관의 인사권이 있는 이조·병조 등은 4촌 매부(妹夫)·동서(同壻)까지 상피 제도에 포함되었지요. 또한 피고와 친한 사이거나 원한 관계가 있는 재판관은 재판을 맡을 수 없었고요. 어느 지방에 연고가 있는 관리는 그 지방에 부임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춘향전'에서 남원 부사의 아들이었던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 땅에 부임하는 것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지요.

 지난달 26일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당 5억 노역형’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어요. 이 판결로 지방 법관제도인 ‘향판제’에 대한 비난도 쏟아졌지요. /김영근 기자

그런데 고려 태조 때의 사심관 제도나 조선 세종 때의 토관 제도는 지금의 향판제와 비슷한 제도였어요. 사심관 제도는 그 지방 출신 인물을 사심관이라는 관리로 임명한 것이에요. 만약 해당 지방에서 반역이 일어나면 사심관이 책임지게 하였지요. 조선시대 토관 제도는 4군 6진 개척으로 두만강 일대의 영토를 차지한 후 생겨났어요. 당시 남쪽 백성을 북쪽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실시했는데 한양에서 함경도로 가려는 관리가 없자 그 지방 출신 인물을 관리로 임명한 것이에요.

향판·향피·상피·사심관·토관 제도 모두 당시에는 꼭 필요해서 생긴 제도였을 거예요. '일당 5억원 판결'은 바람직한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도를 제대로 지키려는 사람들의 의지나 사회 분위기도 무척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운 사건이었어요.

[1분 상식] '4군 6진'이란 무엇인가요?

조선 세종 때 여진족을 몰아내고 개척한 지역을 말해요.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에 여진족이 자주 침입해 백성을 괴롭히자 세종은 압록강 유역에 최윤덕을, 두만강 일대에 김종서를 파견하여 여진족을 몰아냈어요. 그리고 압록강 상류에 4군(郡), 두만강 일대에 6진(鎭)의 군사 시설과 특별 행정구역을 설치했지요.

이 4군 6진 개척은 우리나라가 북쪽 국경선을 압록강과 두만강을 잇는 것으로 정하는 데 바탕이 되었습니다.

★유지(有志): 마을이나 지역에서 명망 있고 영향력을 가진 사람.

★연고(緣故): 혈통·정분·법률 따위로 맺어진 관계.

지호진 |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