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이에요.
천마총에서 출토된 유물이 발굴 41년 만에 전면 공개되어 화제로 떠올랐어요. 금관, 금동관모,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 등 국보·보물 11점을 비롯한 천마총 출토 유물 1600여점이 한자리에 모여 공개된 것이에요. 이 무덤은 1973년 발굴 당시만 해도 경주 황남동에서 발굴된 무덤이라 하여 그냥 '황남동 155호분'으로 불렸어요. 그러다가 금관 등 어마어마한 수의 유물과 함께 하늘을 나는 천마가 그려진 말다래가 발견되면서 1974년에 천마총이란 이름을 얻었지요.
'총(塚)'은 거기에 묻힌 사람이 왕이나 왕비라고 짐작될 뿐,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무덤을 이르는 말이에요. 즉 무덤의 규모나 출토된 유물 등으로 보아 왕릉급의 무덤임은 분명하지만, 정확한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이지요. 그렇다면 천마총은 누구의 무덤으로 짐작할까요?
학자들은 무덤의 형태나 위치, 출토 유물 등을 볼 때, 신라의 제21대 임금 소지마립간이나 제22대 임금 지증왕으로 짐작해요. 소지마립간은 479년∼500년 동안 왕위에 있었던 임금이에요. 백제의 동성왕에게 신라의 왕족이자 이벌찬이라는 최고 벼슬에 있던 비지의 딸을 왕비로 보내는 결혼동맹을 맺고, 월성에 궁궐을 지어 그곳에 머물며 왕권을 강화하기도 했어요. 소지마립간이 태자가 없이 죽자, 그의 친척이자 왕족이었던 김지대로(또는 김지도로)가 64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지증왕(재위 500년~514년)이 되었습니다.
▲ 경주 천마총 모습이에요. 천마총은 신라의 소지마립간, 또는 지증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해요. /토픽이미지
'지증왕'이라니,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고요? 맞아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에 나오는 임금이랍니다. "지증왕 13년 섬나라 우산국~"하고 말이에요. 지증왕은 이사부에게 명령을 내려 지금의 울릉도인 우산국을 정벌하게 하였어요. 이때 울릉도에 딸린 독도 역시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고요. 지증왕은 이 밖에도 많은 업적을 이룩했어요. 왕이나 귀족이 죽으면 노비를 산 채로 무덤에 함께 묻는 '순장(殉葬)' 풍습을 없앴으며, 지방을 주와 군으로 나누고 그곳에 관리를 파견하여 효율적으로 다스리며 왕권을 강화했어요. 경주 동쪽에 '동시'라는 시장을 설치하여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기도 했지요. 지증왕 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소를 이용하여 농사짓는 우경법을 실시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증왕의 두드러진 업적은 국가의 권위를 세우고자 나라 이름과 통치자의 칭호를 바꾼 것이에요. 그때까지 신라는 '사라국' 또는 '사로국'으로 불렸는데, 지증왕이 나라 이름을 '신라(新羅)'로 정했어요. 이 이름은 '덕업일신(德業日新) 망라사방(網羅四方)'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왕의 덕과 업적이 나날이 새로워지고, 사방의 영역을 망라한다'는 뜻이라고 해요. 더불어 나라 최고 통치자의 칭호를 마립간에서 중국이나 고구려처럼 '왕(王)'으로 바꾸었지요. 신라는 그때까지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어때요? 지증왕은 진귀한 유물이 우르르 출토된 천마총의 주인 자격이 충분하지요?
[1분 상식] 신라와 백제는 왜 결혼동맹을 맺었을까요?
493년, 백제의 동성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자, 신라의 소지마립간이 이를 받아들여 이벌찬 비지의 딸을 그에게 왕비로 보내면서 두 나라가 결혼동맹을 맺었어요. 백제와 신라가 이렇게 힘을 합친 이유는 당시 두 나라가 고구려와 말갈, 왜 등 주변의 공격에 시달렸고, 내부적으로도 귀족이나 반란 세력에 맞서야 했기 때문이에요. 동맹을 맺어 서로 군사적인 도움을 주고, 백제의 동성왕은 백제 안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귀족 가문의 여인 대신 신라 왕실의 여인을 아내로 맞아 귀족 세력을 견제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말다래: 말을 탄 사람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에 매단 가죽이나 헝겊 장식.
지호진 |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뉴스 속의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꽃 만발한 '낙선재' 뒤뜰…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죠 (0) | 2021.11.04 |
---|---|
고려 때 사심관·세종 때 토관(土官)… 지금의 향판제와 비슷하죠 (0) | 2021.11.04 |
경의선 종착역 신의주,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했던 곳 (0) | 2021.11.04 |
잡색군·속오군… 조선시대에도 '예비군' 있었다 (0) | 2021.11.04 |
궁궐에서 즐겨 먹던 떡볶이… 케리 장관도 먹고 반했대요 (0) | 2021.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