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임금과 신하가 덕으로 만나는 곳, 경회루

bindol 2021. 11. 4. 04:36

말단 문신 구종직, 몰래 구경하다 임금 앞에서 경전 암송하고 파격 승진
노비 출신 박자청, 태종 때 건축 맡아 경복궁 서쪽에 연못 위 누각 지어
사신 접대·왕의 피서 등에 쓰였어요

문화재청은 지난달 30일부터 오늘(11일)까지 '경복궁 야간 개방' 행사를 열었어요. 한여름 밤 아름다운 궁궐의 모습을 보고자 우리 국민은 물론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경복궁을 찾고 있지요. 관람객이 하루 1500명으로 제한되었는데, 인터넷 예매 1시간 만에 표가 동나서 암표까지 등장했다고 해요. 경복궁의 인기가 정말 대단하지요? 경복궁 안에서도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곳은 서쪽 연못에 세워진 '경회루'입니다. 경회루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조선시대에 그 풍경을 구경하려고 몰래 경회루에 숨어든 선비도 있었다고 해요. 그 선비를 만나러 조선시대로 역사 여행을 떠나 볼까요?

◇경회루를 몰래 구경하다 파격 승진한 말단 관원

조선 전기의 문신 가운데, 교서관에서 일하던 구종직이라는 젊은 선비가 있었어요. 교서관은 유교 경전 인쇄, 국가 제사 때 쓰이는 향과 축문 관장, 도장 글씨체 작성 등에 관한 일을 맡아서 하던 관청이에요. 당시에는 궁궐 안에 자리하고 있었지요. 구종직은 주변 사람에게서 경회루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그러나 경회루는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지요. 꼭 한번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어느 날 숙직을 맡아 궁궐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어요.

 그림=이창우

'옳거니! 오늘 밤 소문으로만 듣던 경회루를 구경해야겠구나.'

구종직은 밤이 깊어지자 슬그머니 자신이 근무하던 교서관 건물을 나섰어요. 그리고 살금살금 몇 개의 문을 지나고 담을 넘어 경회루 앞 연못가에 이르렀지요. 그는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을 금치 못했어요.

'누가 지었는지 참으로 아름답구나! 연못가에 비친 경회루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아.'

그런데 마침 임금이 경회루로 산책을 나왔다가 구종직을 보게 되었어요.

"넌 누구냐? 여기는 어떻게 온 것이냐?"

왕의 물음에 눈앞이 캄캄해진 구종직은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대답했어요.

"교서관에 있는 구종직이라 하옵니다. 경회루의 경치가 마치 신선이 사는 곳처럼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숙직을 하다가 미천한 것이 감히 몰래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왕이 다시 구종직에게 물었어요.

"외우는 경전이 있느냐?"

구종직이 '춘추(春秋)'를 기억한다고 대답하자, 왕은 소리 내어 외어보라고 했어요. 구종직이 '춘추' 한 권을 막힘없이 외우자 왕은 그를 칭찬하며 돌려보냈지요. 그리고 다음 날 구종직을 말단, 즉 관직의 품계 중 거의 맨 끄트머리인 정9품에서 종5품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시켰다고 해요. 그런데 그림처럼 아름다워 구종직을 감탄하게 한 경회루는 과연 누가 지었을까요?

◇노비 출신 건축가가 지은 경회루

조선 제3대 임금 태종이 어느 날 신하를 불러 말했어요.

"궁 서쪽에 있는 작은 누각이 자꾸만 기울어진다는 보고를 받았네."

"신(臣)도 그쪽 땅이 축축하여 염려한 바 있사옵니다."

"자네가 그 누각을 좀 고쳐주어야겠네. 자네는 공사의 달인 아닌가!"

"예. 제가 해결해 보겠습니다."

태종 임금이 공사의 달인이라고 칭찬한 인물은 당시 공조판서 자리에 있던 박자청이에요. 박자청은 고려 말 노비 출신으로 궁궐 내시가 되었다가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 무관이 되었어요. 궁궐을 지키는 병사로 일하다 태조의 믿음을 얻어 왕의 호위를 맡았지요. 태종 때에는 건축 능력을 인정받아 건축물을 새로 짓거나 수리하는 일을 맡았지요. 이후 나라의 주요 건설 공사와 산림, 도예 공방, 광산 등을 관리하는 책임자인 공조판서 자리에까지 올랐답니다.

◇임금과 신하가 덕으로 만나는 곳

박자청은 기우뚱한 누각을 헐어버리고 그 주변에 네모반듯한 연못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연못 가운데 멋진 누각을 지었지요. 누각에서 땅까지 돌다리를 연결해 사람이 왕래할 수 있게 했고요. 누각이란 주변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사방에 문과 벽 없이 높게 지은 이층집을 말해요. 다락집이라고도 하지요.

박자청이 공사를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경복궁 서쪽에 멋진 누각이 완성되었어요. 보는 이마다 감탄할 정도로 그 모습이 아름다웠지요. 태종이 누각의 이름을 지으라고 명하자, 하륜이라는 신하가 '임금과 신하가 덕으로 만난다'는 뜻의 '경회루(慶會樓)'라고 지었어요. 그 뒤로 경회루는 임금과 신하가 함께 잔치를 베풀거나 외국에서 온 사신을 접대하는 장소가 되었어요. 또한 경회루에서 기우제나 과거 시험이 열리기도 했답니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날에는 임금의 피서 장소가 되기도 했고요.

오늘이 경복궁 야간 개방 마지막 날이어서 아쉽다고요? 울긋불긋 예쁜 단풍이 들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에 구경하면 되지요. 가을에도 경복궁 야간 개방 행사가 열리니까요.

[함께 생각해봐요]

경복궁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다섯 개 궁궐 중 첫 번째로 지어진 곳이에요.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법궁(法宮·임금이 사는 궁궐)으로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1867년 재건되었어요. 부모님과 함께 경복궁을 찾아 경회루는 물론 근정전·강녕전·교태전·자경전 등 주요 건물을 살펴보고 각 건물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지호진 |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감수=임학성 | 교수(인하대 한국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