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청나라 사신의 콧대 꺾은 조선 수학자들

bindol 2021. 11. 4. 04:39

청의 사신 하국주가 제안한 수학 대결, 조선 산학자 홍정하·유수석 승리
산학자 집안 출신 홍정하가 쓴 '구일집', 원주율·거듭제곱·방정식 등 문제 풀이
유수석이 썼다고 짐작되는 '구고술요', 피타고라스의 정리까지 설명했어요

지난 13일부터 21일까지 '수학계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수학자대회'가 서울에서 열렸어요. 이 대회에서는 마리암 미르자카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117년 필즈상 역사상 첫 여성 수상자로 선정되어 화제를 모았지요. 필즈상은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명예로운 상이랍니다. 연일 대회 관련 뉴스가 나와 수학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도 높아졌어요.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필즈상을 받는 위대한 수학자가 탄생하기를 바라며, 이번 주에는 조선시대의 위대한 수학자를 만나볼까 해요. 조선시대의 수학자? 과연 어떤 인물일지 궁금하지요?

◇수학 대결을 제안한 청나라 수학자

1713년 하국주라는 중국 청나라 사신이 조선을 방문했어요. 그는 청나라에서 천문학에 대한 일을 주관하는 높은 벼슬에 있던 인물로, 과학·수학 실력이 뛰어나기로 이름 높았지요. 하국주는 조선에 도착하자마자 조선 조정에 뜻밖의 제안을 했어요.

"조선에 훌륭한 산학자(算學者)가 있소? 환영 잔치에 앞서 조선의 산학자와 조촐한 자리를 마련해 주시오. 산학 문제를 풀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내 취미요."

 그림=이창우

산학(算學)은 셈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오늘날의 수학을 말해요. 산학자란 수학자를 일컫는 말이고요. 중국 사신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조선 조정은 급히 호조(戶曹)에 연락하여 실력 있는 산학자 두 명을 나오게 하였어요. 호조는 인구, 세금의 수입과 지출, 나라의 재물 관리 등을 담당하는 부서로, 수학과 깊은 관계가 있었지요. '계사(計士)'라는 회계 사무를 담당한 관직도 따로 있었어요.

◇청나라 수학자의 코를 납작하게 한 조선 수학자

"360명이 있소. 한 사람마다 은 1냥 8전을 내면 그 합계는 얼마겠소? 또 쌀 한 가마니의 값이 1냥 5전이면, 은 351냥으로 몇 가마니를 살 수 있겠소?"

"첫 번째 답은 648냥, 두 번째는 234가마니입니다."

"그렇다면 한 변의 길이를 제곱하여 구한 넓이가 225평방자인 땅이 있다고 칩시다. 한 변의 길이는 얼마겠소?"

"그야, 15척입니다."

하국주가 문제를 내기 무섭게 조선의 두 산학자는 척척 답을 말했어요. 그러자 하국주는 거꾸로 이들에게 수학 문제를 내보라고 하였지요. 그러자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냈어요.

"여기에 공 모양의 옥구슬이 있다고 합시다. 이 구슬로 도장 하나를 만들려고 하는데, 안에 내접한 정육면체를 도장으로 생각하고, 도장을 뺀 무게가 265근 15냥 5전입니다. 이때 입방체(도장)와 옥돌 사이 가장 두꺼운 곳의 두께가 4치 5푼이라면, 옥석의 지름과 내접하는 정육면체 한 변의 길이는 각각 얼마이겠습니까?"

이 문제를 들은 하국주는 한참을 끙끙대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내일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주겠소.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그러고는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는데, 결국 다음 날에도 이 문제의 답을 말하지 못했다고 해요. 사실 하국주가 조선의 산학자와 문제를 풀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한 것은 자신의 수학 실력을 뽐내며 청나라 학문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서였어요. 내심 조선 산학자의 실력을 깔보는 마음도 있었을 테고요. 그런데 오히려 조선 산학자와의 대결에서 지고 만 것이에요. 당시 하국주와 문답을 벌인 두 산학자는 홍정하와 유수석이었어요. 수학 대결로 거만한 청나라 사신의 코를 납작하게 한 홍정하와 유수석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조선시대에 이런 수학 책이 있었다니!

홍정하는 1684년 중인 계급의 산학자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산학자였지요. 나아가 그의 외할아버지와 장인 역시 산학자였다고 해요. 그도 나라에서 여는 산학 시험에 합격하여 산학자가 되었답니다. 홍정하는 '구일집(九一集)'이라는 수학 책을 썼는데, 이 책에서 원주율의 값, 원의 지름·둘레·넓이, 구의 지름과 부피 관계, 산목셈으로 푸는 곱셈 방식, 거듭제곱의 요령, 방정식 등의 내용을 문제 풀이를 통해 소개하였어요. 산목셈이란 대나무 같은 나뭇가지로 계산하는 계산기 같은 것이에요.

또 다른 산학자인 유수석에 대해서는 홍정하와 함께 하국주와 수학 문답을 주고받았다는 기록 외에 별로 알려진 것이 없어요. 조선 후기에 천문학자 남병길이 '유씨구고술요도해(劉氏勾股述要圖解)'라는 수학책을 편찬하였는데, 이것은 유씨 성을 가진 사람이 쓴 '구고술요(勾股術要)'란 책을 바탕으로 한 것이에요. 학자들은 '구고술요'를 쓴 유씨가 바로 유수석이 아닐까 짐작해요. 이 책은 직사각형에 관한 244개 문제와 그 풀이를 수록한 것으로,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대한 설명도 들어 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우리나라에 이렇게 뛰어난 수학자가 있었다니, 정말 놀랍지요?

[함께 생각해봐요]

오늘날 우리는 학교에서 서양의 수학자와 그들이 만들어낸 이론·공식을 중심으로 수학을 배워요. 그렇다면 먼 옛날 동양에는 수학자나 수학 이론이 없었을까요? 우리나라와 중국, 인도 등 동양의 수학자에 대해 알아보세요.

지호진 |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감수=한희숙 |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