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인물] 동독 장기 집권했던 독재자… 부정선거 지휘하다 쓸쓸하게 生 마감

bindol 2021. 11. 5. 05:35

[6] 에리히 호네커

 독일의 공산주의자이자 독일민주공화국의(동독)의 서기장을 지낸 정치인인 에리히 호네커. /Corbis / 토픽이미지

지난 10월 3일은 독일이 통일된 지 25주년이 되는 날이었어요. 독일 정부는 25주년 기념 자료를 만들면서 '통일이라는 꿈을 현실로 만든 11개 사건'을 뽑았지요. 그중 첫 번째로 언급한 것이 1989년 5월 옛 동독 지역에서 일어난 부정 선거였어요. 이달 초 동독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공산당은 자신의 후보들이 평균 98.85%의 찬성을 얻었다고 발표했어요. 하지만 이것은 최악의 부정선거였죠. 전국적으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이것은 결국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로 이어졌답니다. 이 부정선거를 기획한 사람이 당시 동독 국가평의회 의장이었던 에리히 호네커예요. 그는 1976년부터 13년 동안이나 최고 권력자로 동독을 통치하고 있었어요. 그는 동독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집권했던 사람이기도 해요.

호네커는 1912년 독일의 어느 지방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10대 때부터 공산당 조직에서 활동했어요. 1933년에 집권한 히틀러가 공산당을 탄압했지만, 호네커는 비밀리에 더욱 열심히 공산당 활동을 이어갔어요. 하지만 2년 뒤에 체포되어 10년 형을 선고받았죠.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가 패배했어요. 전쟁이 끝나고 승전국들은 독일을 분리하기로 결정했고, 소련이 점령한 동독과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차지한 서독으로 나누었죠. 소련군에 의해 감옥에서 풀려난 호네커는 동독 지역의 정치인이 되죠. 사실 그는 감옥에 가기 전부터 공산당에서 중요한 인물이었어요. 감옥을 나온 호네커는 출세를 거듭해 1971년부터 서기장으로 독일 공산당을 이끌다가 1976년부터는 국가평의회 의장의 자리에 오르면서 최고 권력자가 되죠.

그의 집권 기간, 동독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보다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렸어요. 또한 그는 서독과 무역, 관광 등의 교류를 허용하면서 경제적인 지원을 받았죠. 동서독에 흩어져 살던 이산가족들이 만날 수 있도록 했지요.

하지만 그는 독재자였어요.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재판도 없이 즉결 처분하는 등 철권통치를 휘둘렀지요. 1980년대 후반에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는 가운데도 공산당 일당 독재를 유지하려고 했죠. 그래서 부정선거도 서슴없이 저지른 거예요.

그전에도 동독에서는 부정선거가 일상이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동독 국민이 참지 않았던 거예요. 당시 폴란드에서 시작해 동유럽을 휩쓸던 민주주의의 물결이 동독에서 상륙한 것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선거 규탄 시위는 점점 규모가 커졌어요. 그해 10월 9일에 라이프치히에서 7만 명의 사람들이 시위를 벌이자, 결국 호네커는 국가평의회 의장직에서 사임하고 맙니다. 여기에는 당시 개혁 개방 정책을 추진하던 소련이 동독의 변화를 바랐다는 점도 한몫을 했어요. 20여 년 전 체코에서 '프라하의 봄'이 시작되었을 때 소련은 군대를 보내서 진압한 적이 있지요.

호네커가 사임하고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죠. 그리고 1년이 지나기 전에 독일은 통일을 이루게 되었어요. 통일 후 호네커는 소련으로 망명했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마저 무너지자 독일로 송환되었지요. 그는 서독으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사형시킨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어요. 감옥에서 재판을 받던 중 암으로 위독해진 호네커는 병보석으로 풀려났어요. 그리고 칠레로 망명해서 이듬해 수도 산티아고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1분 상식] '프라하의 봄' 이란 무엇인가요?

1960년대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를 중심으로 벌어진 민주화 운동을 말해요. 그해 초에 개혁파인 둡체크가 집권하면서 언론과 집회, 출판의 자유를 보장했거든요. 그러자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외치기 시작했어요. 이걸 본 소련이 다른 나라에도 민주화의 물결이 퍼지는 것을 두려워해서 다른 동구권 국가들과 함께 무려 20만 명에 달하는 군대를 보내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해 버렸지요. 다행히 체코슬로바키아 사람들이 평화적인 시위만 벌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희생되지는 않았지만, 결국 둡체크 정권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답니다.

구완회 작가·'재미있다! 한국사'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