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역사] 한양 서북쪽 '창의문'… 광해군의 슬픈 역사 담고 있어요

bindol 2021. 11. 6. 04:24

조선시대 모습 잘 보존된 '창의문', 역사적 사건 '인조반정'과 관련 있어
광해군, 임진왜란 후 외교 정책 바꾸자 서인 세력이 반대하고 반란 계획해^ 창의문 빗장 부수고 들어가 왕 몰아내

한양 도성의 사소문(四小門) 중 하나인 창의문이 곧 보물로 지정된다고 해요. 문화재청은 서울 창의문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하겠다고 지난 1일에 밝혔지요. 창의문은 한양 도성의 서북쪽 인왕산 자락에 있는 작은 문으로 사소문 중에 유일하게 조선시대 모습을 간직한 문이에요. 자하문이라고도 하죠. 창의문이 있던 지금의 청운동 일대는 골이 깊고 물과 바위가 아름다운 개성의 자하동과 그 풍경이 비슷했대요. 그래서 자하골 또는 자하동으로 불려 자하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해요.

창의문은 조선시대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가치가 높기도 하지만 조선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의 무대가 된 곳이어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이에요. 과연 창의문과 관계된 역사적 사건은 무엇이었을까요?

◇"광해군을 왕의 자리에서 쫓아냅시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중국 명나라의 힘이 약해지고 여진족이 세운 후금이 강력해지자 선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나라 형편을 생각해 외교 정책을 바꾸었어요. 명나라를 큰 나라로 섬기던 정책에서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중립적 위치를 지켜가며 실리를 찾는 외교 정책을 펼치려 했어요. 이런 광해군의 외교 정책에 반대하며 목소리 높이는 이들이 있었는데 주로 서인 세력이었지요.

 /그림=이창우

"명나라를 배신하고, 오랑캐가 세운 나라를 섬기는 임금은 조선 임금으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궁궐에서 쫓아내는 등 유교 윤리에 어긋나는 잘못을 저지른 왕입니다."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며 동인에서 갈라져 나온 북인 중에서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는 데 힘을 쓴 대북파 인물들이 세력을 얻게 되자 이들과 대립을 벌였던 서인 세력은 힘을 잃고 초라한 세월을 보내게 되었어요.

◇창의문 빗장을 부수고 돈화문 지나

"광해군을 몰아내고 새 왕을 세워 나라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길만이 우리 서인들이 살 길입니다."

서인들은 광해군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고 특히 이들 중에 이귀, 김류, 이괄, 이서 등이 앞장서며 광해군을 왕위에서 몰아낼 계획을 세웠어요.

1623년, 광해군을 몰아낼 계획을 세운 인물들은 광해군의 배다른 동생의 아들인 능양군과 힘을 합쳐 군대를 모아 정변을 일으켰어요. 능양군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의 맏아들이었고, 정원군은 선조의 사랑을 받던 후궁 인빈 김씨가 낳은 아들이에요.

능양군은 자기를 따르는 군사들을 이끌고 한양의 서북쪽, 오늘날의 서울 은평구 역촌동 부근인 연서역에서 이서가 이끄는 군대와 합류해 홍제원과 세검정을 거쳐 깊은 밤에 궁궐로 진입해요. 이때 진입한 궁궐 문이 바로 창의문이었어요.

◇인조반정

 /그림=이창우

"창의문 빗장을 부수고 궁궐로 향하라!"

"어서 돈화문을 열어 반정군을 들어오게 하라!"

능양군과 반정군은 창의문의 빗장을 부수고 도성으로 들어가 창덕궁으로 향했고, 이미 궁궐 안에 있던 반정 세력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열어 반정 세력을 궁궐 안으로 끌어들였지요.

결국 반정 세력은 궁궐 안으로 들어가 광해군을 왕 자리에서 쫓아내고 권력을 잡았어요. 정변을 일으킨 세력은 능양군을 새 왕으로 세웠는데 그가 바로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 임금이에요. 이처럼 서인 중 일부 무리에게 광해군이 왕 자리에서 내쫓기고 대신 능양군 즉 인조가 새 왕이 된 것을 '인조반정'이라고 해요.

창의문을 비롯한 사소문은 조선의 도읍지였던 한양 도성 네 곳에 지은 네 개의 작은 문을 말해요. 사대문과 함께 한양 도성을 드나드는 문이지요. 그렇다면 사대문과 사소문은 언제 어떻게 세워진 것일까요?

◇사대문과 사소문의 이름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이라는 새 왕조를 세운 이성계는 1394년에 나라의 도읍지를 개성에서 한양 즉 지금의 서울로 옮기게 했어요. 한양에는 종묘와 사직, 궁궐, 관청이 들어설 육조 거리 등이 지어졌고, 그 뒤로 성곽을 쌓는 공사가 벌어졌지요.

백악(북악산)-인왕산-목멱(남산)-낙산을 연결하는 성터를 결정하고 나서 10만이 넘는 백성을 불러 모아 성곽을 쌓게 했어요. 그렇게 공사해서 1396년에 한양을 둘러싼 성곽을 완성했고, 성을 드나드는 큰 문 4개에 작은 문 4개도 만들었어요. 바로 사대문과 사소문이에요.

사대문에서 남쪽은 숭례문, 동쪽은 흥인지문, 서쪽은 돈의문, 북쪽은 숙정문이, 사소문에서 동북쪽은 홍화문, 동남쪽은 광희문, 서남쪽은 소덕문, 서북쪽은 창의문이라는 이름이 각각 지어졌고요.

사대문과 사소문 이름은 정도전이 지었는데, 주로 인(仁) 의(義) 예(禮) 덕(德) 등 유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을 문 이름에 넣어 지었어요. 조선 백성이 한양 도성 문을 드나들 때, 문 이름을 기억하면서 자연스럽게 유교의 가르침을 깨우쳐주려고 그랬다고 해요.


[함께 생각해봐요]

반정이란 왕이 무능하거나 포악하여 잘못된 정치를 거듭할 때 무력을 동원하여 그 왕을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새로 왕을 세우는 것을 말해요. 조선시대에는 인조반정과 함께 또 하나의 반정이 있었는데 바로 중종반정이에요. 중종반정은 어떻게 일어나게 된 사건일까요? 그 배경과 과정을 알아보아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