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자' 가짜 논란]
당 현각 말씀 옮긴 '남명천화상…'의 금속활자
증도가자, '직지'보다 앞섰다고 주장하지만 덧질·땜질 등 흔적으로 진위 논란 있어요
직지심체요절보다 더 오래된 금속활자로 기대되던 증도가자가 가짜라는 논란이 뜨거워요. 얼마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청주 고인쇄박물관에서 소장한 증도가자 활자 7개가 위조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거든요. 국과수에서는 3차원 컴퓨터단층촬영장치 등을 통해 증도가자의 금속 표면에 금속을 다시 덧씌우거나 옛 먹을 덧칠한 흔적을 발견했고, 활자의 표면과 내부의 금속 성분 함량이 차이 났다는 근거를 들었어요. 그러나 일부 학자는 국립과학연구원에 반박하며 "증도가자는 가짜가 아닌 진짜"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아주 오래전 청동으로 만들어진 유물은 내부에 부식이 생겨 마치 덧씌운 흔적처럼 오해할 수 있는 균열이 생기기도 하고, 습도 차이와 같은 보존 환경에 따라 옛 먹을 덧칠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거예요. 문화재청에서는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간 상태이고요. 증도가자가 어떤 유물이기에 전문가들 사이에 치열한 의견 다툼이 벌어지는 걸까요?
◇'증도가자'가 어떤 유물이기에
증도가자가 진짜라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1377)보다도 적어도 138년은 앞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요. 이게 사실이라면 국내는 물론 세계 인쇄·출판의 역사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일 테고요. 그렇지만 그것이 속임수로 만든 가짜라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 될 거예요.
▲ /그림=이혁
중국 당나라의 현각 스님이 자신이 깨달은 바를 시처럼 적은 글을 증도가라고 하는데, 고려 때 이 증도가의 각 구절 끝에 중국 송나라의 남명 법천 스님이 풀이하며 꾸미는 글을 덧붙인 것을 남명천화상송증도가라고 해요. 지금 남아 있는 보물 제758호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고려 무신정권 시절 권력을 손에 쥐었던 최우가 옛날에 금속활자로 찍은 책을 다시 목판에 새기게 하여 찍어낸 목판활자본이고요. 금속활자를 목판으로 다시 새겨 찍은 책이지만, 같은 글자끼리 모양이 똑같으면서 활자가 기울어져 있는 금속활자 특유의 모습이 드러나 원본이 금속활자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현재 진위 여부 논란이 있는 증도가자는 원래 금속활자본을 찍을 때 썼던 활자라고 추정되고 있었고요. 증도가자가 만약 가짜로 밝혀지면 아쉽겠지만 여전히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 사용한 사람들은 고려 사람들이에요. 그렇다면 고려인들은 어떻게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게 되었을까요
◇고려시대 장인이 만든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금속활자가 등장하기 전까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목판인쇄와 활판인쇄를 통해 책을 만들었어요. 고려 시대 초 불교와 유교 문화가 함께 수준 높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목판인쇄와 활판인쇄 덕분이었죠. 목판인쇄는 나무판에 문자나 그림을 새기고 그 표면에 먹물 같은 잉크를 묻혀 그 위에 종이를 놓고 문질러서 찍어내는 것이에요. 나무판에 글자를 새기던 중에 글자가 하나라도 틀리면 다시 판을 만들어야 했을 뿐 아니라, 나무의 무게와 부피가 커서 보관도 쉽지 않았어요. 게다가 습기에 쉽게 썩고 여러 차례 인쇄하면 활자가 쉽게 닳는다는 단점이 있었지요. 초기의 활판인쇄는 찰흙·나무로 글자 하나하나를 따로 만들어 원하는 글자를 골라 판을 만들어 인쇄하는 것이에요. 찰흙이나 나무로 만든 활자가 쉽게 깨지고 떨어져나가 역시 망가지기 쉬웠어요.
▲ 가짜 논란이 있는 증도가자(왼쪽 사진)와 목판으로 다시 찍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에서 해당되는 글자에 사각형을 친 것(오른쪽 사진). /뉴시스그러다 북방 이민족이 자꾸 고려에 쳐들어오고, 무신의 난으로 궁궐이 불타면서 많은 책과 목판이 불타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어요. 그래서 고려 시대 활자 장인들은 쉽게 깨지거나 닳지 않으며 불에도 잘 타지 않는 활자를 만들 궁리를 했고, 결국 금속으로 활자를 만들 생각을 한 거죠. 쇠붙이를 녹여 종·불상·동전 같은 물건을 만드는 금속 기술은 예전부터 최고였거든요. 1230년대에 이미 금속활자를 만들기 시작해 고려 후기 문장가인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이란 책도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어요. 현재는 1377년 금속활자로 인쇄한 직지심체요절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찍은 책으로 인정받고 있지요. 15세기 중반 서양에서 금속활자를 이용해 성서를 대량 인쇄했던 구텐베르크보다도 직지심체요절이 80여 년 빨랐다고 해요.
◇가짜 문화재, 빗나간 욕심 때문에 만들어져요
가짜 문화재 논란이 벌어진 건 증도가자가 처음이 아니에요. 가짜 문화재가 국보로 지정되었다가 취소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도 있었어요. 1992년 경남 통영 한산도 앞바다에서 해군이 거북선에서 사용한 총통을 발굴해 발굴 며칠 만에 귀함별황자총통이란 이름으로 국보 274호로 지정된 적이 있었지요. 4년 후, 진급에 눈이 먼 한 해군 대령이 골동품상과 짜고 가짜를 만들어 한산도 앞바다에 빠뜨린 뒤 건져낸 것이 밝혀져 국보에서 해제되었어요. 문화재를 그저 개인의 욕심을 채울 도구로 여긴 사람들 때문에 생긴 일이죠.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까닭은 우리의 역사를 지키고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예요.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어야 해요.
[당시 세계는?]
중세 시대, 전 세계는 칭기즈칸의 셋째 아들이자 몽골제국 2대 황제인 오고타이 칸의 침입으로 고생하고 있었어요. 몽골의 대군은 1235년 유럽 원정길에 나섰죠. 1240년까지 러시아를 모두 점령한 이들은 계속 서방으로 향하며 독일·헝가리와 전쟁을 벌였는데, 싸우는 족족 간단히 눌러버렸죠. 하지만 1241년 오고타이가 죽자 몽골군은 유럽 정복을 멈췄어요. 그 후 200여년에 걸쳐 칭기즈칸의 후예들은 역사상 가장 넓은 지역을 점령했답니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전문 저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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