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국제 무역]
명나라, 3년에 1번 조공 허락했으나 조선 사신단, 1년에 3번으로 늘려
조선 후기, 정부 인정한 개시 무역과 상인 간 몰래 벌인 후시 무역도 발달
최근 우리나라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해야 하는지 논의가 한창이에요. TPP는 태평양 연안 여러 나라가 관세 없이 투자와 무역을 하는 협정이지요. 지난해 10월 미국·일본 등 12개 나라가 함께 타결했고, 우리나라는 가입을 고민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과 국제 질서가 전혀 달랐던 조선시대에는 무역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조선 초기, 조공 횟수 늘려 실리 챙기다
"명나라 황제 폐하, 우리 조선의 사신단이 1년에 3번 조공을 올 수 있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아니다. 3년에 1번만 조공을 오도록 하여라." "1년에 3번 조공 오는 것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3년에 1번만 오라고 하지 않느냐."
1397년, 조선의 사신단이 중국 명나라를 방문했을 때였어요. 조선의 사신단은 명나라 황제를 만나 1년에 3번 조공을 올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고, 당시 명나라 황제인 홍무제는 3년에 1번만 조공을 오라고 만류했답니다. 조공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때마다 공물로 여러 물품을 바치는 것을 말해요. 그런데 왜 명나라는 3년에 1번 조공하는 삼년일공(三年一貢)을 주장한 반면 조선은 1년에 3번 조공하는 일년삼공(一年三貢)을 주장했을까요? '조공이 있으면 사여(賜與·조공을 받은 나라가 조공을 한 나라에 금품을 내려주는 일)도 있다'는 관례 때문이에요. 큰 나라가 작은 나라에 비싼 답례품을 많이 내려주는 것이 큰 나라의 위엄을 세워주는 일이었거든요. 따라서 조공을 받는 나라가 오히려 손해를 보고, 조공을 바치는 작은 나라가 이익을 얻는 경우가 많았어요. 결국 조선 태종 때인 1400년 무렵부터 1년에 3번 조공품과 사신단을 보내기로 결정되었어요. 더불어 사신단의 체제비와 물품 운반비도 명나라에서 부담하기로 했답니다.
이처럼 조공을 통해 물품을 교류하는 것을 조공 무역이라고 해요. 조공이라는 형식 속에 실질적으론 교역품을 맞바꾸는 무역이 이루어졌다는 뜻이지요. 조선은 당시 국제 질서 속에서 실리 외교를 편 셈이에요. 명나라는 조공 무역 외에는 모든 대외 교역을 금지했거든요. 명나라의 제도를 기록한 책인 '대명회전'에 따르면 지금의 오키나와인 류큐왕국과는 2년에 1번, 베트남 그리고 태국과는 3년에 1번, 일본과는 10년에 1번 조공 교역을 했다고 해요.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명나라와 마찰을 빚으면서도 조공 횟수를 늘린 조선이 유리한 무역 협상을 이끌어냈다고 볼 수도 있지요.
◇조선 후기, 개시·후시 무역 발달해
그렇다면 조선 후기는 어떠했을까요? 조선 후기에는 조공 무역 때보다 더욱 활발한 무역이 펼쳐져요. 16세기 들어 상공업이 발달해 상품 생산이 활발해졌어요. 당연히 물품을 거래하는 시장도 훨씬 커졌죠. 1592년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황폐해졌고 물자도 부족해졌어요. 임진왜란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은 서로 필요한 물품을 거래하는 국제무역이 더욱 절실해졌답니다.
청나라와 일본을 상대로 한 무역이 국경 부근에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어요. 조정에서 인정하여 공식적으로 열린 상인들 간 무역을 개시 무역이라고 해요. 중국과의 국경 지대인 압록강 하류 중강에서 열린 개시를 중강개시, 함경도의 회령과 경원에서 열린 개시를 북관개시라고 불렀어요. 일본에 개방한 부산·진해·울산의 왜관에서도 왜관개시가 열렸지요. 왜관개시를 통해 조선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중개무역을 벌여 큰 이익을 얻었어요.
한편, 상인들이 허락된 교역량을 넘어 국경 지대에서 몰래 벌인 무역은 후시 무역이예요. 조선의 사신이 중국의 베이징에 갔을 때 머물던 장소인 회동관에서 이루어진 회동관 후시, 중강에서 열린 중강 후시, 압록강 건너 의주 맞은편 책문에서 이루어진 책문 후시, 함경도 경원 등 북관에서 여진족을 상대로 이루어진 북관 후시, 부산 등 왜관에서 일본인들과 벌인 왜관 후시 등이 있었어요. 조정에선 후시를 금지하려고 했지만, 후시를 단속하는 단련사마저 무역에 끼어들어 단련사 후시라는 이름까지 생겼어요. 1755년 당시 왕이었던 영조가 결국 가장 번창하고 있었던 책문 후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고, 1년에 4~5차례 책문 후시가 열렸답니다.
[당시 세계는?]
1397년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는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 3국이 합병해 칼마르동맹을 이루고 하나의 왕국이 되었어요. 지리적으로 가까운 세 나라가 몽골인의 침입과 독일의 북진에 맞서는 과정에서 여러 번의 정략결혼과 세력 연합을 이뤘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칼마르 삼국 연합의 형님은 덴마크였고,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지배를 받는 입장이었어요. 16세기 스웨덴 사람들이 불만을 갖고 독립운동을 해 칼마르동맹은 해체되었어요.
기획·구성=김지연 기자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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