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수나라 발목 잡은 장마, 고구려에겐 '방패'였죠

bindol 2021. 11. 6. 05:18

[신문은 선생님] 장마와 얽힌 역사적 사건들

고구려 쳐들어간 중국 수나라 대군, 장마 탓에 싸우지도 못하고 철수
1388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장마로 고통받던 병사 이끌고 고려 무너뜨리고 조선 건국했어요

최근 장맛비가 큰 피해를 냈어요. 비구름이 중부지방과 남부 지방을 오가며 많은 비를 내리면서 도로, 가게가 물에 잠기거나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안타까운 일들이 있었어요. 여름마다 찾아오는 장마 피해를 완전히 막는 건 쉽지 않은 일이랍니다.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은 물론 인도 등에서도 여름마다 장마가 내려요. 중국에선 장마를 '메이위(梅雨)'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는 '쓰유(梅雨)'라고 부른답니다. 우리 역사를 들여다보면 장마 탓에 한 나라의 운명이 오락가락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오늘은 장마와 얽힌 역사적 사건들을 함께 알아봐요.

◇고구려와 싸우려다 장마와 싸운 수나라

신라, 백제, 고구려가 나뉘어 있던 서기 589년. 중국에서는 양견(수문제)이라는 수나라의 임금이 중국 곳곳에 나뉘어 있던 여러 나라를 정복해 중국을 통일했어요. 중국을 통일한 양견이 눈길을 돌린 곳은 바로 고구려였어요.

양견은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는 이제 수나라의 신하 나라가 되어 충성을 다하라'고 요구했지만, 고구려의 제26대 임금인 영양왕은 이를 단칼에 거절했어요. 중국을 통일해 기고만장 하던 양견은 이런 고구려의 태도에 크게 화가 났답니다.

 그림=이병익

수나라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생각한 영양왕은 598년 병사들을 이끌고 만주 평야 남쪽에 있는 랴오허 강을 건너 수나라가 지배하던 요서 지방을 먼저 공격했어요. 이 소식을 들은 양견은 병사를 끌어모아 고구려 정벌에 나서게 돼요. 약 1400년 전에 고구려로 향했던 수나라 병사 수만 30만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양견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짐작이 되죠?

598년 6월 수나라 30만 대군은 지금의 랴오허 강 부근으로 나아갔지만, 정작 고구려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중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바로 장마 때문이었어요. 장마가 시작되면서 논밭이 물에 잠기고 불어난 강물에 떠내려간 병사들이 늘어났어요. 심지어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서 수나라 병사들은 싸움도 하기 전에 쓰러졌답니다. 결국 양견은 병사들을 철수시켜야만 했어요. 고구려를 혼내주려던 양견으로서는 하늘이 원망스러웠겠지만, 고구려로서는 때맞추어 내린 장맛비가 나라를 지키는 방패 역할을 해준 것이죠.

10여년 뒤 양견의 뒤를 이어 수나라의 황제가 된 양광(수양제)이 다시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지만, 이번에는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의 전략에 휘말려 대패를 당했어요. 바로 살수대첩이지요. 연이은 고구려 정벌에 실패하면서 국력을 소모한 수나라는 이후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면서 중국을 통일한 지 고작 37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답니다.

◇요동 정벌 갔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건국한 고려 왕조도 장마철에 병사를 일으켰다 멸망하는 운명을 맞았어요. 원나라를 몰아내고 중국을 다스리게 된 명나라는 1388년 고려에 철령 북쪽 땅을 자기들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했어요. 당시 고려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최영 장군은 명나라의 무리한 요구에 분노해 임금인 우왕에게 요동 정벌을 제안했어요.

하지만 최영의 부하였던 이성계는 네 가지 이유를 들며 명나라와 전쟁에 반대하고 나섰어요. 이를 '4불가론(四不可論)'이라고 해요.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쳐서 이기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둘째, 농사에 바쁜 여름에 백성을 군사로 동원하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셋째, 요동을 공격하러 간 사이에 왜구가 쳐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넷째, 장마철에는 활을 붙여놓은 아교가 녹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대군이 전염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노한 최영과 우왕은 이 말을 듣지 않았어요. 결국 이성계는 어쩔 수 없이 최영 장군의 지시에 따라 요동 정벌에 나서게 됐어요.

요동으로 나아가던 이성계와 고려 군사들이 압록강에 있는 위화도라는 섬에 도착하자 장맛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어요. "장마로 물이 불어나 수백 명이 익사했고, 군량미도 떨어져 군사들의 사기가 말이 아닙니다. 앞으로 요동까지 가려면 하천을 많이 건너야 하는데 장마로 빗물이 불어나 건너기 어렵습니다."

장마로 고통받는 병사들을 본 이성계는 우왕과 최영에게 "군사를 되돌리게 해달라"고 요청했어요. 하지만 우왕과 최영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성계에게 재차 요동을 공격하라고 명령했어요.

병사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던 이성계는 결국 왕의 지시를 거부하고 병사를 돌려 개경으로 진격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위화도 회군'이에요. 개경을 점령한 이성계는 우왕과 최영을 몰아내고 고려의 실권을 장악하게 돼요. 그로부터 4년 뒤 이성계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왕이 되어 새 왕조 조선을 건국하였답니다.


기획·구성=배준용·김지연 기자

지호진·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