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방지법]
최근 이슈로 떠오른 부동산 투기, 과거엔 매점·독점이 기승부려
고려 말, 매점매석으로 경제 혼란… 시장 판매 상품 통제해 물가 조절
조선 후기, 가격 조작해 이익 얻는 '도고' 감시하는 기관 있었죠
최근 서울 강남 지역과 부산 해운대 등에 부동산 투기가 일어날 조짐이 보여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어요. 그전에는 공무원 2085명이 세종시 이주를 위해 특별 공급을 받은 아파트를 불법으로 되팔아 시세 차익만 챙긴 사실이 검찰에 적발된 일도 있었지요.
부동산은 토지나 건물처럼 움직여서 옮길 수 없는 재산을 말해요. 투기는 짧은 기간 동안 부동산 또는 여러 물품의 가격이 크게 오르거나 내릴 것을 예상해 차익을 얻고자 물품을 사고파는 행위를 뜻하고요. 투기는 물건을 사용할 목적 없이 차익만을 노리는 행위이기 때문에 나라의 경제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어요. 그래서 옛 우리 선조들도 투기나 매점매석을 막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답니다.
◇나라의 경제를 어지럽힌 매점매석
고려·조선시대에도 부모가 가진 땅을 상속받아 소유권을 가지거나 개인들이 토지를 사고파는 매매도 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오늘날처럼 토지나 건물이 투기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매점매석이 나라 경제의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고 백성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지요. 매점(買占)은 어떤 물건의 값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한꺼번에 사들이는 것으로 우리말로는 사재기라고 해요. 매석(賣惜)은 비싼 값을 받기 위해 물건을 팔지 않고 보관해두는 것을 말하고요. 즉 매점매석은 어떤 물건을 대량으로 사들여 독점한 뒤 시장에 그 물건이 부족해져 가격이 폭등했을 때 되팔아 부당하게 큰 이익을 남기는 거예요.
◇매점매석에 분노한 최영 장군
고려 말 매점매석으로 경제가 혼란에 빠지자 크게 분노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최영 장군이었어요. 최영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평생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탐욕을 품지 않았지요.
▲ 그림=정서용
이 당시 개성은 매점매석으로 물가가 폭등해 상인들이 털끝만 한 이익을 얻으려고 서로 심하게 다투었어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최영은 시장에서 파는 물건은 경시서(京市署)에서 가격을 결정하고, 상인이 세금을 냈음을 증명하는 도장을 찍게 한 뒤 팔 수 있도록 했어요. 최영은 "만약 경시서의 도장이 찍히지 않은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은 쇠갈고리로 등을 찍혀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고, 실제로 커다란 쇠갈고리를 시장에 내걸었답니다. 이 풍경을 본 상인들은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고 해요.
고려의 경시서는 시전(국가에서 도읍지 중심부에 지은 상점)을 보호하고 감독하는 기관으로 고려 목종 또는 문종 때 설립된 것으로 추정돼요. 시전은 국가에서 지은 건물이었기 때문에 상인들은 시전을 빌리는 대가로 나라에 세금을 낸 뒤 장사를 하고 왕실이나 관청에서 필요한 물건을 공급했어요. 대신 경시서는 국가의 허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시전에서 장사를 할 수 없게 단속하고 시전에서 판매되는 상품의 종류와 수량을 통제해 매점매석을 막고 물가를 조절하는 일도 하였지요.
◇조선 후기의 도고 상인과 평시서
우리 역사에서 매점매석이 가장 성행했던 것은 도고(都賈) 상인이 등장한 조선 후기라고 볼 수 있어요. 도고는 상품을 매점하거나 독점해서 물가를 오르게 하거나 매매를 조작하는 행위를 뜻해요.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상품 경제가 발달하고 화폐유통이 활발해지면서 상업이 발달했는데, 당시에는 그만한 수요를 충족할 정도로 상품을 생산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답니다. 상품의 수송도 지금처럼 빠르게 이루어지지 못했고요.
도고 상인들은 이런 점을 이용해 상품유통 과정에서 매점이나 독점을 하여 가격을 조작해 폭리를 취한 것이죠. 그 결과 영세한 상인이나 일반 백성들이 큰 피해를 입었어요.
조선에는 1392년(태조 1년) 고려의 제도를 본받아 경시서를 설치하였다가 1466년(세조 12년)에 평시서(平市署)로 이름을 바꾸었어요. 정조 때인 1781년 영의정 서명선은 "도고 때문에 물가가 마구 뛰어오르고 있다고 하니 평시서로 하여금 몰래 그런 사정을 살피고 조사하여 도고의 못된 행위를 엄히 다스리게 하소서"라는 의견을 임금에게 아뢰었어요. 이 말을 들은 정조는 평시서에 도고를 근절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매점매석 경고한 허생전]
연암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 등장하는 허생도 '매점매석'의 방법으로 돈을 벌었어요.
가난한 선비였던 허생은 한양에서 제일 큰 부자인 변씨에게 1만냥을 빌린 뒤 돈을 벌 궁리를 했어요. 그는 안성으로 내려가 감이나 배 같은 과일을 두 배 값을 주고 잔뜩 사들이고는 되팔지 않고 창고에 쌓아뒀어요. 허생이 과일을 모두 사들이자 온 나라가 난리가 났어요. 조상 제사상에 올릴 과일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러자 상인들이 거꾸로 허생에게 열 배 값을 주고 과일을 다시 사갔어요. 허생은 이런 방식으로 5년 만에 1만냥을 100만냥으로 불려 엄청난 재산을 모았답니다.
박지원은 소설에서 허생의 입을 통해 "훗날 이런 방법을 쓰는 자가 생기면 나라를 병들게 할 것"이라고 매점매석의 문제점을 경고했습니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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