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이상 많아야 형…친구로서 서로 존중하라
청소년 가이드북 ‘격몽요결’
조선시대 나라에서 70세 이상 노인에게 베푼 잔치를 그린 ‘기영회도(耆英會圖)’. 꼿꼿하게 앉아 상을 받는 노인들의 자태가 눈에 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나이가 자기보다 곱절이 되면 아버지처럼 대하고, 10살 이상 많으면 형으로 대하며, 5살 이상 많으면 어느 정도 공경하는 게 좋다.”
율곡의 『격몽요결(擊蒙要訣)』에 나오는 말이다. 조선 후기 예조나 지방 감영에서 수백 본을 간행, 배포했다. 『격몽요결』은 일종의 ‘청소년을 위한 스타일북’이다. 한창 배울 나이의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몸가짐과 태도에 대한 핵심 코멘트였다고 하겠다.
나이차 뛰어넘는 동무·친구 관계
일찍 일어나기 등 몸가짐에 방점
행동 하나하나에서 품격 드러나
몸이 반듯해야 정신도 맑고 건강
규제나 강요 아닌 자기완성의 길
율곡은 먼저 남과 만날 때는 상대를 따뜻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가장 해서는 안 될 짓은 많이 배웠다고 뻐기거나 기운을 믿고 남을 우습게 여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쉽게 빠지는 함정, 즉 지식과 완력, 문(文), 무(武)를 자랑하는 호기에 대한 경계였을 것이다.
대개 학년을 단위로 삼아 형, 동생이라고 부르는 데 익숙한 나로서는 율곡의 나이 구획이 낯설기 그지없었다. 10살은 넘어야 형이라니! 조선시대 사람들은 요즘과 달리 또래 나이의 폭이 컸다. 율곡의 말을 현재에 적용한다면 초등학생은 대학생을 형으로 대하는 게 좋지만, 중고등학생들끼리는 서로 친구로 지내라는 의미다. 조선시대에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있었지만, 1년 혹은 한 달 단위로 선배와 고참을 가르는 문화는 아니었다고 하겠다.
지식과 완력 자랑부터 삼가야
율곡 이이가 직접 쓴 『격몽요결』 표지. 『격몽요결』은 요즘 말로 하면 ‘청소년을 위한 스타일북’이다. [사진 문화재청]
요즘 시대와 조선의 나이 구획의 차이는 교육 시스템에서 연유할 것이다. 조선의 서당과 서원의 학제, 곧 커리큘럼은 근대 국민교육의 6-3-3 학제와 달랐다. 천자문과 소학을 떼고 사서(四書, 논어·맹자·중용·대학)와 함께 『통감(通鑑)』(또는 통감절요),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같은 역사서를 읽었다. 각자의 진도에 맞추어 학습했을 뿐, 수업 연한에 따른 학년 구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교육제도는 ‘보편=국민교육’이 아니다. 중앙집권 국가의 정책을 이해하고 따라줄 ‘국민’이자, 자본주의 체제 재생산에 필요한 평균의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노동자’를 양성할 의무교육 개념이 없었다. 조선시대에는 배움을 그렇게 중시했으면서도 각 개인에게 제도적으로 균일한 교육 프로그램을 강제하지 않았다. 그 결과, 입학과 진학 햇수에 따른 학년별 또래 및 교유집단이 아니라, 나이 차이를 세심하게 의식하지 않는 동무집단을 형성하게 됐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율곡이 위에서 한 말은 바로 그 반영이었다. 이런 점에서 『격몽요결』은 16세기 중엽을 기점으로 변화한 조선 인간형의 일단을 보여주는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율곡 이이가 직접 쓴 『격몽요결』의 내용. 『격몽요결』은 요즘 말로 하면 ‘청소년을 위한 스타일북’이다. [사진 문화재청]
느슨한 나이 구별에도 불구하고 방만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경(敬)’이라고 했다. 멋대로 움직이는 마음을 컨트롤하는 일이다. 이 컨트롤 방법은 『격몽요결』 3장, ‘몸가짐(持身)’에 나와 있다.
“모름지기 항상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의관을 바르게 하고 용모와 안색을 반드시 엄숙하게 하고 두 손을 바로 모으고 꼿꼿이 앉으며, 걸음걸이는 차분하게 하고 말은 신중하게 하여, 모든 행동을 경솔히 하거나 구차하게 지나쳐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내용을 줄여서 ‘일찍 일어나기와 똑바로 앉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이것이 조선시대 일상에서 나타난 몸가짐의 미학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일찍 일어나기. 퇴계 이황과 소재(穌齋) 노수신(盧守愼)은 ‘일찍 일어나기’를 두고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소재는 송(宋)나라 진백(陳柏)이 지은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새벽에 일어나 늦은 밤 잠들 때까지 조심할 일’이라는 이름의 책에 대한 해설서를 지었다. 줄여서 『잠해』라고 한다.
퇴계 이황이 그린 ‘성학십도’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 성인이 되는 10가지 공부법을 그림으로 그렸다. [중앙포토]
소재는 『잠해』에서 “닭이 울어 깨어나면 생각이 차츰 내닫기 시작하므로, 조용히 정리하고 지난 과오를 돌아보거나 새로 배운 것을 되새긴다”고 했다. 퇴계는 소재의 말 가운데 ‘사념(思念)을 끊는다’는 말이 불교의 선(禪)과 가깝다고 비판했고, 이 말을 들은 소재는 ‘태만한 생각을 물리친다’로 고쳤다. 이후 퇴계는 선조(宣祖)에게 올린 ‘성학십도(聖學十圖)’에서 소재의 『잠해』 대부분을 그대로 채택한 바 있다. ‘성학십도’는 성인(聖人)이 되기 위한 공부 방법 10가지를 그림으로 그린 것인데, 일찍 일어나는 것이 곧 성인이 되는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다음 똑바로 앉기-서기. 이는 아홉 가지 몸가짐(九容)과 관련이 있다.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서도 아버지 허담은 딸 효원에게 ‘구용’을 소상히 설명한다. 구용은 깊은 눈빛을 가진 멋진 청년의 모습을 연상할 때 느껴지는 미학이 담겨 있다. “걸음걸이는 무겁게, 손은 공손히, 눈은 단정히, 입은 다물고, 말소리는 조용히, 머리는 똑바로, 숨은 깊게, 서 있을 때는 넉넉하게, 표정은 씩씩하게.”
이이
당연히 멋진 스타일을 구사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고, 반듯이 앉고 서는 행동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성학십도’와 『격몽요결』 같은 텍스트 외에도 『소학』을 읽었는데, 그 이유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하나하나의 행동, 몸가짐에서 자신의 품격을 높이고 사회적 비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추워도 옷을 껴입지 않는다, 가려워도 긁지 않는다, 함부로 팔을 걷어붙이지 않는다, 물을 건너는 게 아니면 옷을 걷지 않는다, 외출할 때는 어디 가는지 알리고, 돌아오면 다녀왔다고 말한다 등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성이 아름답게 빚어질 수 있다고 여겼다.
16세기 등장한 사림의 인간형
이황
한데 그러한 태도가 왜 하필 16세기 중엽 들어 글로 쓰고,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강조하게 됐을까. 한양은 물론 지역에서도 늘어나기 시작한 새로운 지식집단, 즉 사림(士林)이 일상의 자기 규율을 통해서 학문과 사회적 위신의 보편성을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마음속으로 “세상이 다 즐거워한 뒤 내가 즐거워하고, 세상이 다 근심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근심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원래 자기 엄격성은 그냥 나오는 일이 없다. 다 누리고 사는 사람에게는 엄격성이 나오지 않는다.
그 규율은 예(禮)·매너·스타일·에티켓 등으로 부를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는 지배-피지배의 프레임으로 환원되지 않는 자기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억압이나 타인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또는 외부로부터 강요된 규범을 수용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스스로 자임한다는 것, 절차탁마(切磋琢磨), 자르고 갈고 쪼고 문지르듯 자신을 완성하는 과정,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몸가짐을 타고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학습을 통해 이를 충분히 체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신분·권력·부의 차이가 있을 수 없으니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학문은 이 보편성을 이루는 길이었다. 따라서 현실 권력이나 삶의 굴곡에서 벌어지는 어려움도 배움의 힘으로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배움의 힘, 그 출발은 반듯한 몸이었고, 그 몸은 해 뜰 때 맑은 정신으로 일어나는 자신이었다.
심미적 감성이 느껴지는 이 몸가짐은 무엇보다도 건강한 신체의 표현일 것이다. 꼿꼿한 자세는 몸이 좌우 대칭일 때 가능하다. 허리를 펴야 하며, 그럴 수 있는 근육의 강도가 따라야 한다. 몸가짐은 몸의 건강이 드러난 것이고, 또 몸가짐을 통해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다.
몸의 훈련을 중시한 조선시대 놀이이자 이벤트로는 활쏘기가 있다. 지금도 전주향교에 해마다 많은 학생이 방문하여 활쏘기를 경험하고 있다. 이곳을 다녀간 학생의 댓글에 따르면, 컴퓨터 게임으로 휜 허리가 펴지는 듯했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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