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설날에 읽는 차현진의 돈과 세상] 국제사회의 오징어게임

bindol 2022. 2. 3. 05:02

[설날에 읽는 차현진의 돈과 세상] 국제사회의 오징어게임

입력 2022.02.01 00:00
 
 

우리나라의 ‘왕따’에 해당하는 일본말은 ‘이지메’다. 그 말은 1970년대에 등장했지만, 과거 농경시대에도 무라하치부(村八分)라는 나쁜 관습이 있었다. 공동체의 규칙이나 질서를 어긴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해서 외톨이로 만드는 벌칙이다. 무라하치부 통보를 받으면, 집단 협업이 필요한 농사일에서 이웃의 도움을 전혀 얻지 못하게 되어 생존까지 위협받았다.

왕따, 이지메, 무라하치부가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국제 사회에서도 따돌림 받는 국가는 생존하기 힘들다. 지금 북한이 그러하다.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에 대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과의 석탄·철광석 거래를 금지하고 금융거래까지 차단했다. 사전적 제재였다.

미국은 한술 더 떠서 사후제재까지 동원했다.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에게 북한 당국의 계좌를 콕 집어 동결을 요구하고, 협조하지 않을 경우 은행 폐쇄를 시사했다. 애국법 제133조에 근거한 그런 협박을 제3자 제재 또는 세컨더리 보이콧이라고 한다. 북한을 향한 21세기의 무라하치부다.

 

농경사회라면 모를까, 결속력이 약한 국제사회에서는 무라하치부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2005년 후안 자레이트 미 재무부 차관보가 묘수를 찾았다. 국제송금을 위해서 은행들끼리 통신하는 전산망(SWIFT)에서 북한과 거래가 의심되는 금융기관을 기술적으로 솎아내는 것이다. 동업자들과 통신이 두절되면, 금융기관은 생존할 수 없다. 그때부터 세컨더리 보이콧이 무서운 제재수단이 되었다. 북한의 김정은은 트럼프를 만났을 때 “피가 마르는 고통을 겪었다”며 현대판 무라하치부를 풀어달라고 매달렸다.

김정은은 미국이 감시하는 SWIFT를 피해 외교관들이 가방으로 현찰을 실어 나른다. 미국은 그 정황을 잡기 위해 오늘도 정보망을 총동원하여 추적한다. 바야흐로 정권의 존망을 건 숨바꼭질, 아니 오징어게임이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