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57] 다정이 냉정보다 힘이 세다
맬서스의 인구론이 세상에 미친 영향은 크다. 문필가 칼라일에게는 ‘경제학은 우울한 과학’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고, 과학자 찰스 다윈과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에게는 ‘적자생존’의 영감을 불어넣었다. 차 이름으로 더 유명한 얼 그레이 총리가 1834년 빈민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잉여 인간’, 즉 노숙자들을 작업터에 구금시킨 뒤 알량한 식사와 함께 극심한 노동을 강제할 수 있는 법이다. 식량 부족의 운명을 타고난 인류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공짜로 자비를 베풀 여유가 없다는, 강박관념의 산물이었다.
영국이 졸지에 인정머리 없는 사회로 변했다. 그러자 찰스 디킨스가 반기를 들었다.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주인공 소년이 “제발, 조금만 더 주세요” 하고 읍소하는 장면은 작업터의 부실한 식단에 대한 고발이었다. 다른 작품인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구두쇠 스크루지가 “안 돼, 안 돼” 하고 울부짖은 것은 ‘잉여 인간’들이 혹사당하는 작업터를 봤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스크루지가 자신의 몰인정을 회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면서 해피엔딩이 된다.
찰스 디킨스의 두 작품이 발표된 1840년대는 영국에서 차티스트 운동(노동운동)이 맹렬히 펼쳐졌다. 빈부 격차에 분노한 노동자들이 보통·비밀선거 등을 담은 인민헌장을 내걸고 자본가들에게 저항했다. 그러자 세상이 달라졌다. 식량에 대한 수입관세가 철폐되어 생계비가 낮아지고, 여성과 아동의 노동시간이 통제되었다. 산업재해 조사도 시작되었다.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오늘날 인구론은 더 이상 읽히지 않는다. 반면 크리스마스 캐럴은 1843년 출판된 이래 지금까지 절판된 적이 없다.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냉정한 시각과 따뜻한 시각의 싸움에서 따뜻함이 이겼다. 지난 7일은 ‘다정 선생(Mr. Sentiment)’이라는 별명의 디킨스의 생일이고, 14일은 ‘인구 선생’이라는 별명의 맬서스의 생일이다.
'차현진의 돈과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현진의 돈과 세상] [59] 대통령과 자문 기구 (0) | 2022.02.23 |
---|---|
[차현진의 돈과 세상] [58] 베니스의 정치인 (0) | 2022.02.16 |
[설날에 읽는 차현진의 돈과 세상] 국제사회의 오징어게임 (0) | 2022.02.03 |
[차현진의 돈과 세상] [56] 비판을 싫어하면 사고 난다 (0) | 2022.01.26 |
[차현진의 돈과 세상] [55] 싸우면서 건설했다 (0) | 2022.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