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58] 베니스의 정치인
과거 이탈리아 베네치아(영어명 베니스)는 유럽 해운의 중심지였다. 남쪽으로는 아프리카의 황금해안, 동쪽으로는 흑해까지 항로가 이어졌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주인공 안토니오의 배가 향하던 곳은 북쪽 스칸디나비아 반도였다. 하지만 수심이 얕기로 유명한 도버해협을 지나다가 모래톱에 걸려 좌초하고, 안토니오는 빚에 쫓긴다.
베네치아의 상인 안토니오는 파산했지만, 상인의 도시 베네치아는 영원할 것 같았다. 그러나 14세기에 흑사병을 만나 인구가 40%나 줄었다. 그러자 콧대 높고 배타적이기로 유명했던 베네치아 사람들이 문호를 개방했다. 베네치아를 다시 살린 것은 이민 정책이었다.
베네치아가 또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 지금은 6만명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도시 전체가 매년 조금씩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매년 관광객 2000만명이 찾는 세계 인류 문화유산이 곧 사라질 지경이다. 그래서 중앙정부와 국제기구의 재정 지원을 받아 지반 전체를 높이는 중이다. ‘모세 프로젝트’다.
도시가 도시다워지려면, 도로와 건물, 그리고 인프라가 번듯하고 안전해야 한다. 그런 시설을 도회적(urbs, urban)이라고 한다. 물질이다. 물질적 투자 면에서 베네치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모세 프로젝트’에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별 효과가 없다. 지난 1200년 동안 베네치아가 여섯 번 물에 잠겼는데, 그중 네 번이 지난 20년 동안 일어났다. 기후변화의 영향이다.
정치 탓도 크다. 주민들이 연고에 끌려 뽑은 탐욕스러운 정치인들의 배임, 수뢰, 협잡이 끊이지 않는다. 그 탓에 공사는 진척이 없다. 장차 ‘베니스의 정치인’이라는 희곡이 나올 판이다. 결국 도시를 지키는 것은 물질이 아닌 정신이다. 도회적 시설을 갖추려면, 거기에 걸맞은 의식이 필요하다. 그런 의식을 갖췄을 때 시민적(civitas, civic)이라고 한다. 그래서 투표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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