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차현진의 돈과 세상] [60] 아령과 요령

bindol 2022. 3. 2. 04:40

[차현진의 돈과 세상] [60] 아령과 요령

입력 2022.03.02 00:00
 
 

당나라와 송나라 때 뛰어난 문장가 여덟 명을 당송팔대가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소순·소식·소철 삼부자를 삼소(三蘇)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삼소에게 맞먹는 사람을 찾는다면, 단연 변씨삼절(卞氏三絶)이다. 수원 출신인 변영만, 변영태, 변영로 세 형제다. 막내인 변영로는 시조 ‘논개’를 쓴 시인으로 유명하지만, 원래 기자였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자 “세계를 제패한 두 다리”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면서 일장기가 붙은 상반신을 없앴다. 다리만 찍힌 사진을 본 조선총독부는 사상이 불순하다며 그를 해고시켰다.

맏형 변영만의 항일 활동은 더 적극적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변호하려다가 제지당한 뒤 인권 변호사가 되어 총독부와 늘 대립했다. 해방 후에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이 그 위원회를 해체했다. 그러자 초대 법무장관 제의를 물리치고 교수가 되었다. 기이하게도 법학이 아닌 어문학을 가르쳤다. 한학, 영문학, 국문학, 심지어 산스크리트어까지 가르쳤다.

 

변영만에게 법무장관직을 거절당하자 대통령은 둘째 변영태에게 초대 외무장관을 제의했다. 형과 의절하는 아픔을 감수하고 변영태는 그 제의를 수락했다. 장관 변영태의 현실 감각은 탁월했다. 독도 분쟁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하자는 일본의 속셈을 간파하고 단칼에 거절했다. 그리고 “독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한국 땅”이라는 절대 명제를 확립했다.

패전국 일본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입하자 변영태는 한국이 외톨이가 될 것을 근심했다. 하지만 자신은 해외에서 늘 외톨이였다. 귀한 외화를 낭비하게 될까 봐 호텔 방을 나가지 않았다. 집에서 가져간 아령으로 고독하게 체조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의 아령은 묵직했다. 요즘 공직자나 그 가족이 법인 카드를 쓰면서 피우는 가벼운 요령과 달랐다. 1969년 3월 9일 변영태가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