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56> 자기와 자력 ; 거대한 자석

bindol 2022. 3. 28. 03:52

전설 시대인 3황(皇) 시대를 이어 5제(帝) 시대 첫 번째 왕인 황제(黃帝 BC 2717~2599)는 지남차(指南車)를 탔단다. 마차 방향을 바꿔도 늘 남쪽 방향을 가리키는 무언가라면 자석을 이용한 지남철 아닐까? 그렇다면 중국 한나라 때 발명되었다는 나침판보다 2000여 년 앞서 나침판인 지남철이 사용되었겠다. 신라(羅)로부터 온 바늘(針) 판이라 나침판이라는 설도 있던데 글쎄다. 지금도 중국인들은 지남(指南)이라는 낱말을 사용한다. 남쪽을 가리켜 동서남북 모든 방향을 안내할 수 있으니 안내(案內)를 뜻한다. 아무튼 인류는 5000여 년 전부터 자석을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서양에선 고대 그리스의 마그네시아에서 어느 목동이 쇠 지팡이 끝에 쇠붙이가 달라붙는 걸 보고 마그넷(magnet)이라 불렀단다. 마그넷을 길고 뾰족하게 갈아 만든 나침판으로 서양인들은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별자리를 보고 항해하는 것보다 정확했다. 왜 나침판은 남쪽과 북쪽을 가리킬까? 지구 자석에서 양쪽 끝의 자성이 제일 강하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지구로 진입하는 온갖 입자들은 자성이 강한 지구 양 끝에서 충돌하여 오로라로 빛나는 이유다. 이러한 지구에 관해 본격적 체계적 지속적으로 연구한 과학자가 있었다. 이탈리아의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보다 앞서 실험과학의 아버지로 불릴 만한 영국의 길버트(William Gilbert 1544~1603)다. 그는 20여 년 동안의 꾸준한 실험 끝에 1600년 ‘자석, 자성체, 지구에 관하여’란 책을 출판했다. 이를 통해 지구는 거대한 자석이므로 나침판 N극은 북쪽을, S극은 남쪽을 향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400여 년 전엔 대단한 발견이었다. 지구의 안(in)을 본(sight) 통찰(insight)이었기 때문이다. 지구는 자전하기에 지구 외핵에 흐르는 철에 전류가 발생하며 이 전류로 인해 지구 밖 6만여km까지 자기장(磁氣場)과 자력선(磁力線)을 미치는 거대한 자석이 된다. 다이나모(dynamo) 이론의 핵심이다. 이렇듯 지구는 거대한 자석이기에 지구 생명체를 보호한다. 지구가 거대한 자석이 아니라면 두터운 자기장이 사라져 태양풍 등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방사선을 막을 길이 없다. 이는 단지 철새들의 생물학적 나침판이 작동되지 못해 새들이 죽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지구가 자석이 아니 된다면 방사선에 취약하도록 진화된 지구 생명체는 전멸할 것이다. 방사선에 내성을 가진 어느 특별한 생명체만 극소수 살아남고 그 생명체로부터 다시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 없을 거라 장담하진 못한다. 지구멸망 시나리오 중에 지구 자기장의 소멸이 있으니 하는 말이다. 설령 지구 자기장이 유지된다 한들 우주 방사선이 지구 자기장을 뚫고 들어 올 정도로 강력해진다면? 그때가 되면 자석을 이용한 자기(Magnetic) 부상열차, 자기(Magnetic) 공명촬영 등 세상 모든 최첨단기술도 무용지물이 된다. 생각하면 무섭다. 그런데도 그냥 그러려니 산다. 그러다 갑자기 닥칠 수 있다. 6차 대멸종이다. 막을 방법이 없다. 인류의 종말은 물론 생명의 종말이다.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