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 의회 독주... 중국식 인민 독재와 닮은 꼴
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29회>
공수처의 신설부터 “검수완박”까지 대한민국 헌정사 70여 년의 형사·사법 체계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제 곧 물러나는 정권의 여당이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 나아가 결국에는 부패, 경제까지 이른바 6대 중대 범죄에 대한 검찰의 수사권을 모두 박탈하겠다는 발상은 기막힌 자가당착이자 우스꽝스러운 행위 모순이다. 지난 5년간 대한민국의 집권 세력은 왜 그토록 무도한 방식으로 무리한 법안을 밀어붙이는가? 그 밑바탕에는 혹시 집권 여당의 뿌리 깊은 서구식 입헌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깔려 있지 않나? 대통령이 “높은 산봉우리의 나라”라 칭송한 중국에 대한 맹목적 동경은 없는가? 불길한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권력분립과 견제와 균형을 파괴하는 반민주적 의회 독재는 중국식 인민민주독재를 빼닮았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다 박탈해서 경찰에게 모두 몰아주고 나면, 경찰의 수사권은 누가 어떻게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나? 여당 대표의 노골적인 발언처럼 “사법고시 합격한 검찰보다 경찰이 권력을 더 잘 따른다”고 한다면, 경찰을 수족처럼 부리는 그 상부의 권력자는 대체 누가, 무슨 수단으로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나?
어떤 이는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처”(공수처)가 권력형 부패를 근절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호기롭게 출범한 후 1년여 동안 244건을 수사하고도 기껏 1건밖에 기소하지 못한 공수처는 이미 무용론과 폐지론에 휩싸여 있다. 국가권력의 핵심부 청와대에 대한 강제 수사는 꿈조차 못 꾸면서 오로지 정권과 각을 세운 검찰을 향해서만 무딘 칼날을 휘둘러 대고 있다. 야당이 공수처를 “정권 호위처”라고 폄훼해도 반박도 제대로 못 하는 실정이다.
공수처 신설과 검수완박... 견제와 균형 무너진다
인류사에서 검찰의 탄생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인권을 유린하던 경찰국가의 출현을 막기 위해 프랑스 대혁명 이후 도입된 획기적 사건이었다. 이후 대부분의 문명국에선 검찰이 직접 수사권을 갖고 범죄와의 전쟁을 벌여왔다. 검찰이 범죄 사실을 확정하고 범죄인을 기소하기 위해선 반드시 직접 수사권을 가져야만 한다. 세 가지 이유에서 그러하다.
첫째, 검찰의 기소권은 본질적으로 수사권을 수반한다. 수사 없는 기소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단적인 예로 헌법 제12조 3항과 헌법 16조에 보장된 검사의 “영장청구권”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와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를 전제로 한다. 상식적으로 직접 수사 없이 검사는 범죄의 진상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만약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정확한 기소 자체가 이뤄질 수 없다. 검사는 무지의 장막에 갇히고, 범죄자는 법의 칼날을 피해 잠적할 수 있다.
둘째, 검·경이 동시에 수사권을 가져야만 양자 사이의 교차검증과 상호 견제가 가능해진다. 권력형 부정부패의 경우 경찰은 임면권자의 영향 아래 놓이므로 그 수사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찰의 수사권을 감시하고 보완하기 위해선 반드시 검찰이 수사권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비근한 예로 미국의 연방검사, 주 검사, 지방 검사는 제한 없이 모든 범죄를 수사할 수 있고, 또 수사를 개시할 수도 있다.
셋째, 자유민주주의가 전체주의보다 우월한 이유는 마치 직접 메스를 들고 제 몸의 환부를 도려내는 집도의처럼 정부 스스로 “살아있는 권력”의 부패를 자발적으로 척결할 수 있는 입헌주의적 자정 능력에 있다. 검찰은 정부의 부정부패와 관원의 비위 행각을 면밀하게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직이다. 권력형 비리에 관한 검찰의 칼날 같은 수사가 없이는 정부의 자정 기능이 소멸된다.
물론 검찰 권력의 비대화도 막아야만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법무부는 검찰에 대한 조언, 감사, 견제, 문책의 권한을 갖는다. 검찰과 경찰 사이의 교차검증, 법무부와 검찰 사이의 상호감시, 청와대와 검찰 사이의 상호긴장이 없이는 권력의 집중과 전횡을 막을 수가 없다. 교과서에 적혀 있듯, 근대 입헌주의는 정부 각 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생명으로 한다.
극히 예외적으로 중국의 교과서만 정부 내 권력분립을 부정하고 국가 기관 사이 견제와 균형을 경계한다. 중국은 의회(議會)와 행정부의 전일적 합일을 추구하는 강력한 레닌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을 감시하고 규찰하지만, 레닌주의 국가에서 입법·행정·사법부의 모든 기관은 공산당 중앙정부의 명령과 지시를 따르는 하위 조직에 불과하다.
국가의 전권 독점한 중국공산당의 형사·사법 독재
2021년도 부패체감지수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180개국 중에서 66위 정도이다. 2015년 168개국 중에서 83위였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시진핑 정부의 부패와의 전쟁이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했다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부패와의 전쟁이 과도한 인권유린의 소지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공산당은 국가의 전권을 독점할뿐더러 전국의 당 조직과 당원들에 대한 막강한 감시, 수사, 처벌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중앙기율검사위원회(中國共産黨中央紀律檢査委員會, 이하 ‘중기위’)는 중공중앙의 지휘 아래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왔다. 중기위는 덩샤오핑이 최고영도자로 추대되고 개혁개방이 국가의 기본노선으로 채택되던 1978년 12월 중공 11기 3차 전회(全會)에서 창설된 중공 중앙의 직속 감찰 기관이다. 1992년 이후 강력한 감찰기구로 급부상했으며, 2012년 12월 시진핑 정권 출범 후에는 반부패운동의 중추 기관으로 강화되었다.
중기위만으로는 역부족이었는지 중공 중앙은 2018년 3월 11일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의결을 통해서 국가감찰위원회(國家鑑察委員會, 이하 국감위)를 신설했다. 중기위와 국감위는 별개 조직이지만, 이 두 조직은 “부서를 통합해서 업무를 처리한다”는 이른바 “합서판공(合署辦公)”의 원칙에 입각해 있다. 그 결과 이 두 위원회는 공안(公安), 각급 경찰, 검찰 위에 군림한다.
시진핑 정부의 부패와의 전쟁은 전국 공산당원들의 기강 확립과 비위행위 적발의 명목으로 전개되었다. 2021년 현재 9천 5백만 명이 넘는 공산당원이 감찰과 교정(矯正)의 대상이지만, 그 가족, 친지와 지인도 언제든 연루될 수 있으므로 실제로 중기위의 칼날은 전 인민을 향하고 있다.
1920년대 창당 초기부터 중국공산당은 조직 내부의 단속과 정비를 위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당원들을 감시하고 처벌해 왔다. 1940년대 옌안의 정풍(整風)운동 과정에서 마오쩌둥은 스탈린식 공포정치의 기술을 이용해서 1만 명 이상을 처형했다. 1950-60년대 중국공산당은 더 촘촘한 감시망을 확충해서 대민지배력을 강화했다. 문화혁명 과정에는 정상적인 기율 검사의 기구는 무력화되고, 대신 광범위한 정적 숙청이 일상적으로 자행되었다.
1976년 마오쩌둥 사후 2년여 만에 중국공산당은 문혁의 광기를 청산하고 개혁개방의 신작로로 나아갔지만, 채 10년이 못 된 1980년대 후반 중국의 관료사회는 부패의 늪에 빠졌다. 정부 기관 곳곳에 광범위하게 만연했던 관료부패는 결국 대규모의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1989년 6월 4일 톈안먼 대학살의 비극을 낳았다. 1992년 민심 이반을 막고 경제 개혁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 중공 중앙은 부패와의 전쟁을 최고의 의제로 내걸었다. 그 과정에서 중기위는 강력한 권력 기구가 되었다. 본래 중기위는 피의자 구류, 압수수색 등의 강제력을 갖지 못했으나 1994년 이후 중기위의 권력은 극적으로 강화되었다.
중앙기율검사위, 이중 규정 “쌍규(雙規)” 통해 조직적 인권유린
가령 1994년도 수정 법안 제28조에 따르면, 중기위는 자의적으로 정부 문서, 은행 계좌, 회의록, 업무일지 등의 광범위한 자료를 조사하고 복사할 수 있으며, 피의자의 개인정보를 사찰하고, 은행 계좌를 추적하거나 동결할 수도 있고, 회계장부, 영수증 등 관련 증거를 압수·수색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기위는 피의자를 즉각 임의로 구속해서 취조하는 무시무시한 “쌍규(雙規)”의 권한을 갖는다.
여기서 쌍규란 말 그대로 이중(二重) 규정이란 의미인데, 일단 표면적으로 당의 기강과 규율을 위배했다고 여겨지는 부패 혐의자는 중기위가 임의로 정한 “시간과 장소”에 반드시 무조건 출두해야 한다는 강력한 명령을 이른다. 쌍규에 따라 변명의 기회도 없이 전격적으로 구속된 피의자들은 변호인 접견, 가족 면회 등 최소한의 법적 권리도 박탈당한 채로 장시간 혹독한 심문에 시달리며, 가혹행위와 고문을 당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당원들도 적지 않다. 요컨대 쌍규는 중국의 정규 형사사법 체계를 벗어나는 중기위의 초법적 권한이다.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의 심층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에만 전체 구속자의 10-20%에 달하는 33,000명에서 66,000명 정도가 쌍규에 의해 구속되었는데, 이는 최소한의 추산일 뿐이다.
중공중앙 직속의 기구인 중기위 아래로 각 지방 단위의 당 위원회에는 기율검사위원회(이하 ‘기검위’)가 설치되어 있다. 각 지방 정부마다 따로 그 지방의 기검위가 조직되어 있는 셈이다. 시진핑 정부는 중기위의 권한을 대폭 확장하면서 지방의 기검위에 대한 수직적인 지배력도 강화했다. 그 결과 중공 중앙은 중기위를 통해서 전국 모든 지역에서 반부패운동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지방의 기검위는 “부패와의 전쟁”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하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 결과 지방 각지에서도 쌍규를 이용한 인권유린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쌍규에 의해 구속됐던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부패와 상관없이 정치적 보복이 가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는 피의자의 가족까지 잡혀가서 한 달까지 구금된 사례도 있다. 피의자에 대한 수면박탈, 무차별 구타, 기합 주기, 자백 강요, 독방 감금, 인신공격, 인격모독, 24시간 감시가 일상적으로 가해질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의 고문이 자행된다. 심지어는 고문치사의 사례도 드물지 않다.
“호랑이와 파리떼 모두 색출” 무제한 권력 휘두르는 경찰국가
중기위는 이처럼 “부패와의 전쟁”에서 이른바 “호랑이와 파리떼”를 모두 색출한다는 명분 아래 무제한의 권력을 마구 휘두른다. 중국의 검찰은 무소불위로 치닫는 중기위의 권력을 감시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 중기위의 권력은 중국공산당 최고영도자의 직접적 통제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중기위의 모든 결정에는 중공중앙 정치국 상임위원회가 직접적으로 간섭한다. 마찬가지로 지방의 기검위의 모든 결정에는 지방의 당위원회가 직접 간여한다. 중앙에서 지방까지 수직적 위계질서가 엄격하게 갖춰져 있기에 지방의 기검위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도 실제로는 중공중앙의 의지가 발현된 결과라고 불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중기위는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에 복무하는 중공 중앙 직속의 부패 감찰기구로서 최고 영도자의 의지를 실현할 뿐이다. 중국과 같은 레닌주의 국가에서 권력분립과 견제와 균형은 원천적으로 부정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기위, 국감위, 기검위 등 당내의 감찰기구는 물론 공안부, 경찰, 검찰 역시 전일적인 일당독재의 하위 기구로 전락하고 만다. 검찰과 경찰의 교차검증, 검찰과 법무부의 상호 견제, 검찰에 의한 최고 권력의 감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이와 반대로 자유민주주의의 검찰은 “공공의 변호사(public attorney)” 혹은 “공익의 대표자로서”(검찰청법 제4조)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까지 철저히 수사하고 기소할 수가 있으며, 또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어야만 한다. 레닌주의 국가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근본적 차이가 바로 그 점에 있다. 진정 중국식 경찰국가의 출현을 원하는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다 박탈하면, 바로 그때 경찰국가의 지옥문이 활짝 열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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