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인간이 먹고 사는 데 아무런 쓸 데와 영양가가 없다. ②연구 스케일이 가장 크다. ③인간의 끊임없는 호기심에 따른다. 이러한 설명에 부합되는 학문은? 천문학이 아닐까 싶다. 천체물리학이라고도 불린다. 과거의 점성술이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유용한 수단이었다면 현대의 천문학은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무한한 지적 욕구를 채우려는 대단한 작업이다. 이 천문학이 탐구하는 대상들 중 가장 기묘한 걸 딱 하나 꼽자면? 단연코 블랙홀이다.
블랙홀(black hole)은 말 그대로 검은 구멍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구멍이 아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에 빨대와 같은 구멍이라고 한다. 될수록 근사(近似)하게 말하자면 도무지 이상한 점이다. 천체물리학자들은 특이점(singularity)이라는 전문용어를 쓴다. 부피는 제로(0)인데 밀도는 무한대(∞)다. 이상하고 특이한 점이 아닐 수 없다. 이 점의 정체는 별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star)이 아니라 빛나지 않는 검은 별(dark star)이다. 항성 행성 위성 혜성 혹성도 아니다. 초신성 중성자별 적색거성 백색왜성도 아니다. 어떤 별들이 계속 수축해서 어느 특정 임계 반지름보다 작아진다면 어느 무한대 상황이 되고 그 별은 자체 중력을 못 견디고 한 점으로 붕괴된단다. 그 어떤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요상한 특이점이다. 그러니 검은 구멍이 아니다. 매우 이상한 특이점과 사건의 지평선이라 불리는 경계면이 블랙홀이란 검은 별이다.
이러한 경계면 안 블랙홀로 들어오면 빛마저도 빠져나갈 수 없다. 블랙홀에서의 탈출속도는 광속 이상이어야 하는데 블랙홀은 무지막지 무시무시한 중력으로 초속 30만km 광속을 잡아 당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블랙홀은 모든 걸 빨아 당기만 할까? 이에 천체물리학자들은 그럴듯한 용어를 만들어냈다. 화이트홀! 하얀 구멍은 아니다. 블랙홀의 반대 개념이다. 블랙홀로 무한수축된 질량이 에너지로 방출되는 가상 시공간이다. 덩달아 나온 웜홀이란 따뜻한(warm) 구멍이 아니라 벌레(worm) 구멍이다. 벌레가 열매 속을 갉아 먹어 만든 통로처럼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길이다.
정말로 우주에 블랙홀-웜홀-화이트홀이 있을까? 일단 블랙홀에 대해 과학계는 그 존재를 분명히 인정했다. 펜로즈(Roger Penrose 1931~)는 1964년 ‘중력 붕괴와 시공간 특이점’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아인슈타인이 이론적으로 예측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부정했던 블랙홀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논문이었다. 이 논문을 바탕으로 펜로즈는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블랙홀을 관측하는 데 성공한 두 명의 천체물리학자들과 함께. 펜로즈의 제자였던 호킹(Stephen Hawking 1942~2018)은 블랙홀의 특이점이 빅뱅의 특이점과 유사하다고 여겼다. 우리 우주가 어느 특이점의 대폭발로 생겼듯 또 다른 우주가 어느 특이점의 대폭발로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주가 여러 개이겠다. 평행 우주론과 다른 다중 우주론이다. 무거운 질량에 의해 시공간이 휘어지고 이에 따라 생기는 중력과 중력장 및 중력파까지는 대충 이해하겠다. 더 이상은 감당하기 힘들다. 그래도 신비한 우주를 알고 싶어 하는 천체물리학자들의 무용한 지적 탐구는 끝이 없다. 이러다 정말로 인간이 신의 경지에 도달할 것만 같다.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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