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설 우주관보다 난해한 홀로그램 우주론
빛은 무엇인가? 서양 근대과학은 이 물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황당한 질문이었다. 빛은 그냥 빛이지 뭐? 별로 파헤칠 대상이 아닌 듯하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빛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빛이 입자냐 아니면 파동이냐에 대해서 엎치락뒤치락했다. 결국 빛은 입자이자 파동이며, 파동이며 입자라고 결론 났다. 그러는 와중에 전자 광자 양자 양성자 중성자 원자핵 전기 자기도 알게 되고 빛이 전자기파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울러 감마선 엑스선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 마이크로파 전파도 알게 되었다. 현대문명은 빛에 관한 연구들의 결실이라 해도 무방하다. 결코 쓸데없는 연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시공간의 집인 우주(宇宙)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도 쓸모없어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천동설을 기반으로 하는 프톨레마이오스 우주관이건, 지동설을 기반으로 하는 코페르니쿠스 우주관이건 인간 세상에 당장 아무런 관련이 없고 특별한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주(universe)를 보는 관점(觀點)이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패러다임 전환되면서 인류의 삶은 완전히 달라져 갔다. 우주관이 바뀌니 세계관 종교관 가치관 인생관이 바뀌게 되었다. 그러니 우주관에 관한 연구가 쓸데없는 연구는 아니었다.
우주관은 바뀌었지만 우주론에 관해선 여러 말(論)들이 분분하다. 정상(定常) 우주론이 폐기된 후 우주론은 어지럽게 전개되고 있다. 빅뱅 우주론, 빅바운스 우주론, 빅크런치 우주론, 가속팽창 우주론, 다중우주론, 평행우주론, 인플레이션 우주론, 등각순환 우주론, 비대칭 우주론, 거울 우주론, 거품 우주론, 시뮬레이션 우주론, 프랙탈 우주론, 블랙홀 우주론 등… 가장 황당한 게 홀로그램 우주론이다. 우주가 홀로그램이란다. 그런데 홀로그램 우주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우주가 홀로그램이 아니라고 반증할 게 없단다. 이 우주가 홀로그램이라고 입증할 것도 없겠다. 있을 수 없는 설이라지만 희미한 근거도 있단다.
홀로그램이란 2차원 평면 빛들의 간섭무늬를 이용한 홀로그래피 기술로 만들어진 허공 속 입체영상이다. 홀로(holo)는 고대 그리스어로 전체(whole)를 뜻한다. 멀리(tele) 메시지를 전하는 전보인 텔레그램에서처럼 그램(gram)은 메시지나 정보를 뜻한다. 그래서 홀로그램은 1차원 2차원과 같은 불완전한 정보가 아니라 3차원이라는 전반적 입체 영상정보로 투영된 것이다. 그러나 홀로그램이라는 3차원 입체 영상은 허공에 떠 있는 허구적 환영(幻影)일 뿐이다. 이처럼 우주 안에 사는 인간 세상도 허구적 환영이란다. 나도 신기루 같은 환영이겠다. 우주 어딘가에 실체적 2차원 정보가 있단다. 평면에 저장된 2차원 정보들이 우리 지구로도 투영되어 입체적 3차원 환영을 만든다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다지도 황당무계한 홀로그램 우주론을 설파하는지 난해하며 난감하다. 다만 이런 우주론이 주는 의미는 인생을 성찰케 한다. 불교의 핵심 철학인 공(空) 사상과 맥락이 닿는다. 색즉시공(色卽是空)! 이로부터 없어선 안 될 영(Zero)이 나왔다. 부처님께선 홀로그램 우주론을 어찌 생각하실지 여쭙고 싶다. 언젠가 쓸모 있을 것이니 잘 알아보라고 조용히 타이르실지 모른다. 내 안에서 혼(魂)이 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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