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學 工夫

第 8章 修身 齊家

bindol 2022. 5. 28. 05:51

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 人

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이른바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함이 몸을 닦음에 있다는 것은, 사람은 가까이 하고 사랑하는 바에(之=於) 편벽(치우치게)되며, 천히 여기고 미워하는 바에 편벽되며,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바에 편벽되며, 가엽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바에 편벽되며, 오만하고 태만히 하는 바에 편벽된다. 그러므로 좋아하면서도 그의 나쁨을 알며 미워하면서도 그의 아름다움을 아는 자가 천하에 적은 것이다.

辟讀爲僻 惡而之惡敖好並去聲 鮮上聲

辟은 벽으로 읽고, 오지지오, 오, 호는 모두 거성이고 선은 상성이다.

 

人謂衆人 之猶於也 辟猶偏也

인은 중인을 이른다. 지는 어와 같고 벽은 편(치우침)과 같다.

朱子曰 古註辟音譬 窒礙不通 只是辟字便通 況此篇自有僻字 辟則爲天下僇 是也

주자 왈, 고주에 辟의 음은 비라 하니, 막히고 통하지 않는다. 단지 벽자가 곧 통한다. 때마침 차편(대학 10장)에 辟字가 있으니 辟則爲天下僇가 이것이다.

 

五者在人 本有當然之則 然常人之情惟其所向而不加察焉

다섯 가지는 사람에게 있어 본래 당연한 법칙이 있다. 그러나 상인의 정은 오직 향하는 바 대로 하고 살핌은 가하지 않으니,

新安陳氏曰 此章朱子亦以察字言之 興國本作察 他本作審者非

신안진씨 왈, 此章에 주자는 또 찰자로 말하였으니, 흥국본에는 察이고 타본은 審인데 잘못 되었다.

則必陷於一偏而身不修矣

그렇다면 반드시 한쪽으로 빠져서 몸이 닦이지 않을 것이다.

西山眞氏曰 偏之一字爲修身齊家之深病

서산진씨 왈, 치우친다는 한 글자는 수신 제가에 깊은 병이다.

○ 朱子曰 正心修身兩段大槪差錯處皆非在人欲上 皆是人合有底事 如在官街上差了路

주자 왈, 정심 수신의 두 단계에서 대개 어긋난 것은 모두가 사람의 욕심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 사람에게 합당하게 있는 일이니, 대로(官街)상에서 길을 잃는 것과 같은 것이다.

 

○ 忿懥等是心與物接時事 親愛等是身與物接時事

분치 등은 마음이 외물과 접했을 때의 (개인의) 일이고, 친애 등은 몸이 외물과 접했을 때의 일이다.

 

○ 之所親愛 如父子當主於愛 然父有不義不可以不爭 子有不肖亦不可不知敎之 之所敬畏 如君固當敬畏 然君當正救責難也 只管敬畏不得 賤惡固可惡 或尙可敎 或有長處 亦當知之

가까이하고 사랑하는 것은, 부자간에는 마땅히 사랑하는 것이 주가 되지만, 그러나 아버지가 의롭지 못하면 다투지 않을 수 없으며 자식이 못나면 또한 가르침을 몰라서는 안 되는 것 등이며,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것은, 군주는 진실로 마땅히 공경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군주는 마땅히 책난을 바로 구해야 하며, 단지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만 주관해서는 안 되는 것 등이다.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는 것은, 진실로 미워하는 것이지만 어떤 것은 오히려 가르칠 수 있으며, 간혹 좋은 점도 있는 것이니, 또한 마땅히 그러한 것을 알아야 한다.

 

○ 問 敖惰恐非好事

오만하고 태만한 것은 아마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 질문하니,

曰 此如明鏡之懸 姸醜隨其來而應之 不成醜者至前亦喚做姸者 又敖惰是輕 賤惡是重 旣賤惡得 如何却不得敖惰 然傳者猶戒其僻則須檢點 不可有過當處 哀矜如有大姦方欲懲之 被他哀鳴懇告又却寬之 這便是哀矜之偏處

왈, 이것은 밝은 거울을 달아 놓은 것과 같으니, 예쁘고 못난 것은 그 보는 바에 따라 응하는 것이지 못난 것이 앞에 이르러는 데도 예쁘게 바꾸어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오만하고 태만한 것은 가벼운 것이고,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는 것이 중시된다. 이미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어찌 오히려 오만하고 태만하지 아니하겠는가. 그러나 傳者가 이미 그 치우침을 경계하였으니 반드시 하나하나 검사를 해야지 보통보다 정도가 지나침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가엽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것은, 매우 간사한 것이 있으니 바야흐로 그를 징계를 하고자하나 그가 슬프게 울고 간곡히 하면 또한 오히려 너그러워지니 이것이 바로 가엽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치우침이다.

 

○ 五者各自有當然之則 只不可偏 如人饑而食 只合當食 食纔過些子便是偏 渴而飮 飮纔過些子 便是偏 如愛其人之善 若愛之過則不知其惡 便是因其所重而陷於所偏 惡惡亦然 下面說人莫 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上面許多偏病不除 必至於此

다섯 가지는 제각각 모두 당연이 있는 법칙인데 단지 치우치면 안 된다. 예를 들면 사람이 배가 고파 밥을 먹을 때, 오직 딱 알맞게 먹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지나치면 치우침이 되고, 목이 말라 물을 먹을 때, 조금이라도 지나치면 치우침이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선을 좋아할 때도 만약 좋아함이 지나치면 그의 잘못을 알지 못하니, 바로 이것이 그 중요함으로 인하여 치우치는 바에 빠지는 것이다. 악을 미워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다음에 사람은 자기 자식의 잘못은 알지 못하고 자기의 묘목이 충실함을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 말한(上面) 허다한 치우침의 병폐를 제거하지 못하면 반드시 거기에 이르는 것이다.

 

○ 北溪陳氏曰

敖只是簡於爲禮 惰只是懶於爲禮 有一等人 上非可愛 次非可敬 只是平平人 接之自令人簡慢

북계진씨 왈, 오만한 것은 단지 예를 행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것이고, 태만한 것은 단지 예를 행함이 게으른 것이다. 한 등급의 사람이 있는데 좋아할 만하지도 않고 존경할 만하지도 않으면 다만 보통 인으로 그와 응대할 때는 저절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소홀이 하고 업신여기게 된다.

 

○ 問人之其所親愛而辟焉一章 終未見身與物接意思 潛室陳氏曰 接此五種人 便有此五種辟 豈不是身與物接

가까이하고 사랑하는 바에 치우침의 一章에서 아무리 해도 身과 物이 接한(사회생활의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마음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라고 질문하니, 잠실진씨 왈, 이 다섯 가지를 접해본 사람은 곧 이 다섯 가지의 치우침이 있는 것이니 어찌 身과 物이 接함(사회생활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 玉溪盧氏曰

好而知其惡 是親愛之不偏 惡而知其美 是賤惡之不偏 二不偏惟明德無不明者能之 所好且知其惡則一家孰敢爲惡 所惡且知其美則一家孰不爲善 如此則明德明於一家矣

옥계노씨 왈, 좋아하면서 그 잘못을 아는 것은 가까이하고 사랑하는 치우침이 없는 것이고, 미워하면서 그 좋은 점을 아는 것은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는 치우침이 없는 것이니, 이 둘의 치우침이 없는 것은 오직 명덕을 밝게 하지 않음이 없는 자가 가능한 것이다. 좋아하는 바에 또한 그 단점을 안다면 한 집안에서 누가 감히 악한 짓을 할 것이며, 미워하는 바에 또한 그 장점을 안다면 한 집안에서 누가 감히 선을 이니 할 수 있는가. 그러한 즉 명덕이 한 집안에 밝아진 것이다.

 

○ 勿軒熊氏曰

親愛畏敬哀矜 指所愛之人 言有此三等 賤惡敖惰 指所惡之人 言有此二等 偏於愛則不知其人之惡 偏於惡則不知其人之善 上下文相照應如此

물헌웅씨 왈, 親愛畏敬哀矜은 사랑하는 바의 사람을 가리켜 이 세 가지가 있음을 말한 것이고, 賤惡敖惰는 미워하는 바의 사람을 가리켜 이 두 가지가 있음을 말한 것이니, 좋아함에 치우치게 되면 그 사람의 나쁜 것을 알지 못하고 미워함에 치우치게 되면 그 사람의 착함을 알지 못한다. 상하 문이 서로 상응함이 이와 같다.

 

○ 雲峯胡氏曰

或疑敖惰不當有 殊不知本文人字非爲君子言 乃爲衆人言 章句曰衆人又曰常人是也 衆人中固自有偏於敖惰之人 如下文人莫知其子之惡苗之碩 亦泛言 多溺愛貪得之人也 兩人字示戒深矣

운봉호씨 왈, 간혹 오만하고 태만히 하는 것은 마땅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데, 모름지기 본문의 人字는 군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중인을 말한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章句에 왈, 衆人 또 왈, 常人이 이것이다. 중인 중에는 진실로 오만하고 태만한 사람에 치우침이 있는 것이니, 하문에 사람은 그 자식의 잘못과 자기의 묘목이 충실함을 알지 못함은 모두 전체로 말한 것이고 좋아함에 빠지고 탐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니, 두 개 人字가 경계함을 보여줌이 매우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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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그러므로 속담에 이러한 말이 있으니 왈, 사람들이 자기 자식의 악함을 알지 못하며 자기 묘의 큼을 알지 못한다 하였다.

諺音彦 碩叶韻時若反

언의 음은 언이고 석의 협운은 시약반(샥)이다.

 

諺俗語也 溺愛者 不明 貪得者 無厭 是則偏之爲害而家之所以不齊也

언은 속담이다. 사랑에 빠진 자는 밝지 못하고 얻음을 탐하는 자는 만족함이 없으니, 이것은 편벽됨이 해가 되어 집안이 가지런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雙峯饒氏曰

之其親愛等而辟者言身之不脩也 莫知其子之惡言家之不齊也 大意謂惟其溺於一偏 故好不知其 惡 惡不知其美 惟其身不脩 故家不齊 當看兩故字 人之其所親愛而辟 爲凡爲人者言 莫知子之 惡姑擧家之一端言之

가까이하고 사랑하는 것과 치우침은 몸이 닦여지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고 그 자식의 잘못을 알지 못하는 것은 집안을 가지런히 하지 못함을 말하는 것이다. 큰 뜻은 오직 한 치우침에 빠진 것이니, 그러므로 좋아하면 그의 나쁨을 알지 못하고 미워하면 그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오직 그 몸이 닦여지지 않은 것이니, 그러므로 집안이 가지런히 되지 않은 것이다. 마땅히 두 개의 故字을 잘 봐야 한다. 가까이하고 사랑하는 바에 치우침은 보통 사람을 말한 것이다. 자식의 잘못을 모르는 것은 우선 집안의 한 단서를 들어서 말한 것이다.

 

○ 玉溪盧氏曰 子之惡苗之碩皆就家而言

옥계노씨 왈, 자식의 잘못과 (자기) 묘목의 충실함은 모두 집안에 나아가서 말한 것이다.

 

○ 雲峯胡氏曰

心與物接唯怒最易發而難制 所以前章以忿懥先之 身與事接唯愛最易偏 故此章以親愛先之 至 引諺曰 只是說愛之偏處 人情所易偏者 愛爲尤甚 況閨門之內義不勝恩 情愛比昵之私 尤所難 克 身所以不脩 家所以不齊者 其深病皆在於此

운봉호씨 왈, 마음이 物에 접했을 때는 오직 怒(忿懥)함이 제일 쉽게 나타나고 억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前章에서는 분치로써 먼저 말했고, 몸이 物에 접했을 때는 오직 사랑함이 제일 쉽게 치우치게 되니 그러므로 此章에서는 친애로써 먼저 말했고, 속담을 인용하여 말할 때도 다만 사랑의 치우침을 설명하였다. 인정에 쉽게 치우치는 것에는 사랑이 한층 더 심하거니와 더군다나 집안 안에서는 의리가 은혜를 이겨낼 수는 없는 것이다. 감정의 사랑 그 친근함의 사사로움은 더욱 극복하기가 어려운 것이라 몸이 닦여지지 아니하고 집안이 가지런히 되지 않은 이유가 되니 그 깊은 병이 모두 여기(愛之偏處)에 있는 것이다.

此謂身不修 不可以齊其家

이것을 일러 몸이 닦이지 않으면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問 如何脩身專指待人而言

朱子曰 脩身以後大槪說向接物待人去 又與說心處不同 要之根本之理則一 但一節說闊一節去

어찌하여 수신은 오직 남의 접대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까?

주자 왈, 수신이후는 대개 물건에 접하거나 남을 접대하는 것에 대해서 설명해 나아가는 것이다. 또 마음에 대한 설명과는 같지 않다. 요지컨대 그 근본적인 이치는 같으나 단지 한 절씩 한 절씩 넓혀 설명해 나가는 것이다.

 

錢氏曰

上章四箇有所字 此章六箇辟字 其實皆心之病 但上四者 只是自身裏事 此六者却施於人 卽處 家之道也

전씨 왈, 7장에서 4개의 有所字와 이 8장의 6개 辟字는 그 실제는 모두 마음의 병이지만 다만 위 7장의 4가지는 단지 자신의 마음속의 일이요, 여기 8장의 6가지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니 바로 집안일을 처리하는 도리이다.

 

雙峯饒氏曰

身以心爲之主而心意爲之機 人所以之其親愛等而辟者 以其心之不正耳 心所以有忿懥等則不得 其正者 以其意之不誠耳 意苟誠矣則忿懥等之必謹其獨而毋敢失其正 親愛等之必謹其獨而毋敢 流於僻 是知誠意卽正心脩身之要也 章句所以丁寧之以密察可察卽謹獨之謂也 有所忿懥等而能 密察 是謹獨以正其心也 之其所親愛等而能加察 是謹獨以脩其身也 章句於二章 察之一字 凡四言之 省察之工夫 豈非自誠意章之謹獨而發哉 不特正心脩身章爲然也 由是而齊家治國平天下無往不自謹獨出焉 傳於釋齊家治國章曰 心誠求之 釋平天下章曰 忠信以得之 曰誠求 曰忠信 皆誠其意之謂也 誠其意卽謹獨之謂也 故程子論天德王道皆曰 其要只在謹獨 論出門使民亦曰 惟謹獨便是守之之法 可謂得其要矣

쌍봉요씨 왈

몸은 마음으로서 주인으로 삼고 그리고 마음은 뜻으로서 단서로 삼는 것이니, 사람이 그 친애 등으로 마음이 치우치는 까닭은 그 마음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분치 등이 있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는 까닭은 그 뜻이 성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뜻이 진실로 성실하면 분치 등이 반드시 謹其獨하여 감히 그 바름을 잃지 아니하며, 친애 등이 반드시 謹其獨하여 감히 치우침에 흐르지 아니 하니, 이것은 誠意가 바로 正心 修身의 요점임을 아는 것이다. 장구에 매우 간곡히 密察, 加察이라고 한 까닭은 바로 謹獨을 일러 말하는 것이며, 有所忿懥 등과 能密察 이것은 謹獨으로 그 마음을 바로 잡는 것이다. 之其所親愛 등과 能加察 이것은 謹獨으로 그 몸을 닦는 것이다. 장구의 7장 8장 2곳에서 察을 4번이나 말하였으니, 省察의 공부가 어찌 誠意 章의 謹獨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겠는가? 단지 誠心 修身 章만 특별히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이것으로부터 본다면 齊家 治國 平天下가 스스로 謹獨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것이 없다. 傳에 보면 齊家 治國 章에 해석하여 왈, 마음을 진실하게 하여 구한다. 고 했고 平天下 章에 해석하여 왈, 忠과 信으로 그것을 얻는다. 고 했으니, 曰誠求과 曰忠信은 모두 그 뜻을 성실히 함을 말한 것이니, 그 뜻을 성실히 하는 것은 바로 謹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자가 天德과 王道를 논한 것에 모두 왈, 그 요점은 단지 謹獨에 있는 것이다. 논어에 門을 나가서 백성을 부림에 또한 왈, 오직 謹獨하는 것이 곧 그것을 지키는 법이다. 고 했으니 요점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右傳之八章 釋修身齊家

이상은 전문의 8장이니 수신제가를 해석하였다.

8 장 끝

[출처] 第 8章 修身 齊家|작성자 주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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