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67> 물질과 생물 ; 생명 현상

bindol 2022. 6. 11. 05:50

분자인 물질로부터 생물의 생명현상을 밝힌 업적

 

 

뉴턴이 완성한 근대 물리학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었다. 고전역학 시대가 저문 것이다. 1900년 플랑크로부터 촉발된 양자 이론과 1905년과 1915년 아인슈타인이 밝힌 상대성 이론을 통해서다. 20세기 초반엔 기라성(綺羅星)과도 같은 천재 과학자들이 줄줄이 출현했다. 그들이 한자리에 모인 1927년 제5차 솔베이 회의는 대사건이었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 29명이 모였는데 17명이나 노벨상을 받았다. 이 중 가장 돋보이는 인물을 딱 한 명 꼽으라면? 물론 필자의 개인적 주관적 자의적 생각에 따른 선정이다.

무슨 이유로 슈레딩거(Erwin Schr dinger 1887~1961)를 선정하게 되었을까? 그는 복잡한 여성 편력을 가진 바람둥이로 알려져 있다. 허례허식과는 거리가 먼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그렇다고 선정 이유는 못 된다. 슈레딩거 하면 고양이가 떠오른다. 슈레딩거 고양이는 양자역학의 피상적 문제점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사고실험이었다. 어떻게 상자 속에 산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가 동시에 중첩된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지 말이 안 된다는 항변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슈레딩거 고양이는 양자역학을 쉽게 설명하는 비유가 되었다. 그래도 선정 이유는 안 된다. 슈레딩거의 파동방정식은 양자역학의 체계를 세우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로 인해 그는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 방면에 큰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은 많다. 그러니 선정 이유는 아니다. 슈레딩거는 1927년 솔베이 회의에 참석한 29명의 물리학자 중 생명 현상에 적극 관심을 둔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나치가 모국인 오스트리아를 점령하자 1937년에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으로 망명했다. 그곳 트리니티칼리지에서 1943년에 행한 강연내용을 모아 이듬해 책으로 냈으니, 바로 ‘생명이란 무엇인가?’다. 슈레딩거를 가장 돋보이는 과학자로 꼽은 결정적 이유다.

이 책을 낸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아무나 못 한 엄청난 일이었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그는 자신의 전공에만 한정되지 않고 다양하게 넘나들며 섭렵했다. 어릴 때부터 폭넓은 재능을 지녔던 그는 화학 회화 식물학 고대문법 시 등에 재능을 보였다. 물리학자로서 생명 현상을 탐구하게 된 바탕은 다양한 분야들을 서로 통하며 건너는 간제적 통섭(通涉, Crossover)이었다. 그렇다고 물리학으로 묶어서 거느리는 통합적 통섭(統攝, Consilience)은 아니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슈레딩거는 엔트로피 열역학 차원에서 불연속적 양자(量子)인 유전물질 분자의 안정적 영속성이 생명이라고 논한다. 그의 책은 1952년 이중 나선구조로 된 유전자 발견과 분자생물학 발전에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 신비한 생명현상을 물리학과 화학으로 설명하려는 그의 담대한 시도가 기능적 환원주의라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슈레딩거의 독보적 업적을 폄하하거나 폄훼할 수는 없다. 혹시 그에게 질문할 수 있다면 딱 하나만 여쭙고 싶다. “선생님! 분자 물질로부터 도약한 생물의 생명체 정보를 분자적 수준에서 편집할 수 있는 지금의 생명과학 생명기술 생명공학에 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다방면에 폭넓게 자유로이 사유했던 그의 답변이 궁금하다. 필자의 생각과 같을까?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