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달빛은 지극히 맑고 둥근데
- 元宵月色劇淸圓·원소월색극청원
정월 대보름 달빛은 지극히 맑고 둥근데(元宵月色劇淸圓·원소월색극청원)/ 먼저 보면 아들을 낳는다고 노인이 말하네(先見生男古老傳·선견생남고로전)/ 무슨 일로 남쪽 이웃집의 노처녀는(抵事南隣老處子·저사남린노처자)/ 사람들을 등지고 말없이 눈물만 흘리네.(背人無語淚泫然·배인무어루현연)
독자 여러분, 어제 정월대보름이었는데 오곡밥과 부럼 등을 드시면서 한 해의 건강과 소원을 모두들 비셨는지? 대보름 관련 시를 한 수 소개한다. 위 시는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시인인 담정(潭庭) 김려(金鑢·1766~1822)의 작품 ‘上元俚曲(상원리곡·정월대보름의 속요)’이다. 그는 1801년(순조 1)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진북·진전면 일대가 속한 우해(현재 진동 앞바다)에 유배됐다. 그곳에서 우리나라 최초 어류학서인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1803년에 지었다. 우해에 사는 특이한 물고기에 대한 조사·연구를 기록한 책으로, 정약전 ‘자산어보’보다 11년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전에 시골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저녁이 되면 대보름달을 남보다 먼저 보고, 소원을 빌기 위해 뒷동산에 올랐다. 특히 아낙네들은 달을 먼저 보겠다고 시끌벅적했다. 달을 먼저 보면 아들을 낳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필자도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이 말을 들었다. 그런데 시에서 이웃집 노처녀는 돌아서서 닭똥 같은 눈물만 줄줄 흘렸다. 시집을 가야 아들을 낳는데, 아직 시집을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음력 대보름날인 상원은 중원(中元·음력 7월 15일·백중날)과 하원(下元·음력 10월 15일)에 대칭되는 말이다. 이날 약밥·오곡밥, 묵은 나물과 복쌈·부럼·귀밝이술을 먹으며, 기복행사와 농점(農點) 등도 행했다. 필자가 어릴 때 대보름날 저녁이 되면 온 마을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필자도 논에서 쥐불놀이를 했고, 어른들이 달집태우기를 하면 신기해 고함을 질렀다. 그런 세시풍속이 많이 사라졌다. 불과 몇 십 년 전 풍속이 먼 역사가 된 느낌이다. 지리산 화개동에도 대보름날 행사는 고사하고, 그런 날이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소리 소문 없이 지나가버렸다.
'조해훈의 고전 속'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48> 조조가 적벽대전을 앞두고 읊은 시 ‘단가행’ (0) | 2022.06.01 |
---|---|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47>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 읽으니 남동생들 생각나 (0) | 2022.06.01 |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45> 매화의 향기를 읊은 송나라 왕안석의 시 (0) | 2022.06.01 |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44> 밤의 일곱 가지 모습을 묘사한 이옥의 글 (0) | 2022.06.01 |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43> 매화를 보기 위해 도산으로 온 퇴계의 매화 시 (0) | 2022.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