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59> 중국 천산에서 선승 만난 조선 문인 이정귀

bindol 2022. 6. 2. 05:36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59> 중국 천산에서 선승 만난 조선 문인 이정귀

“이 승려는 곡기 끊고 말하지 않은 지가 이미 칠팔 년…”(是僧絶粒不語, 已七八年·시승절립불어, 이칠팔년)

    •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노승이 이 산에 들어온 지 십여 년이지만 세간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외국의 높은 관리께서 어찌 이 먼 곳까지 오셨습니까?” … 상 위의 그릇에는 송화와 솔잎이 가득하고, 발우 하나에 맑은 물이 담겨있다. … “이 승려는 곡기를 끊고 말을 하지 않은 지가 이미 칠팔 년이나 되었습니다. 이제 공을 위해 석단으로 나오고 또 입을 열어 말하기까지 했으니 재상께서는 분명 선계의 연분이 있으실 겁니다.”

“老釋入此山十餘年, 一未見世間人. 外國高官, 何自從遠來?” … 床上松花松葉滿櫃, 一鉢盛淨水. … “是僧絶粒不語, 已七八年. 今爲公出石壇, 且開口語, 宰相必有仙分矣.”(“노석입차산십여년, 일미견세간인. 외국고관, 하자종원래?” … 상상송화송엽만궤, 일발성정수. … “시승절립불어, 이칠팔년. 금위공출석단, 차개구어, 재상필유선분의.”

조선 중기 문인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1564~1635)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천산(天山)을 유람하고 쓴 ‘遊天山記’(유천산기)의 일부로, 그의 문집 ‘월사집’(月沙集) 권38에 실려 있다.

그가 1604년(선조 37)에 세자 책봉 주청사로 명나라에 가다 요양(遼陽)에서 천산으로 잠시 들어갔다 참선하고 있던 승려를 만난 것이다. 이정귀가 찾았을 때 그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었다.

천산은 승경처로 꼽혀 역대로 북경으로 가는 사신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713년 김창업(金昌業·1658~1721), 1833년 김경선(金景善·1788~1853)이 이곳을 유람했는데, 모두 이정귀의 이 글을 안내서로 삼았다.

목압서사가 있는 이곳 화개동은 지금 화개십리벚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오늘 부산에 모임이 있어 화개공용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구례에서 출발한 버스가 도무지 오지 않았다. 화개 벚꽃을 보려고 전국에서 오는 상춘객의 차량으로 정체가 매우 심했다. 결국 부산에 가질 못했다.

벚꽃도 볼 겸 대전에 사는 벗이 6시간 반을 운전해 왔다. 여행을 많이 다닌 벗과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천산 이야기가 나와 이정귀의 위 유람기도 잠시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