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국회에 국회의원이 없다
요즘 국회 의원회관을 돌아보면 10개 의원실 중 8개에서 “오늘 의원님 안 오세요”라고 한다. 국회가 45일째 아무 역할도 안 하면서 의원들이 국회에 올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국회에 없다. 집에 있지는 않겠지만 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분노하는 국민 입장에서 국회는 ‘놀고 있다’.
국회가 놀고 있는 건 두 달도 더 지난 ‘검수완박’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검수완박 강행 처리로 국회법을 유린했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검수완박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사법개혁특위 참여도 거부했다. 민주당은 헌재 제소를 취하하고 사개특위에 참여하지 않으면 원 구성에 합의할 수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이 조건을 거부하면서 국회는 멈췄다.
민주당은 치사하다. 검수완박을 강행할 때는 “법적 문제 없다”면서 밀어붙이더니 뒤늦게 헌재 제소가 신경 쓰이자 소 취하를 조건으로 걸었다. 경제 위기로 고통받는 국민을 위해 국회가 문을 열어야 한다고 연일 호소하지만, 경제 위기 돌파의 선결 조건이 어떻게 검수완박일 수 있나. 민주당은 최근 헌재 제소 취하는 빼고 사개특위 협조만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검수완박 후속 조치인 사개특위가 정상 가동되면 헌재 제소에서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에서 “민주당 수가 뻔히 보인다”고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더 큰 문제는 국민의힘에 있다. 국민의힘은 무책임하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내민 조건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헌재에서 검수완박 법안이 뒤집힐 여지도 있어 보이니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꽃놀이패를 놓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을 설득할 수 있는 대안이라도 마련했어야 한다. 국정 운영의 무한 책임이 있는 집권 여당이 민주당이 혹할 만한 ‘당근’을 제시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민주당에서 “협상에 들어가면 ‘나는 모른다, 마음대로 해라, 배째라’며 양보를 요구하는데 누가 여당이고 누가 야당인지 헷갈릴 지경”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 분명 정상이 아니다.
국회법에는 지켜야 하는 절차가 명시돼 있지만 어겼을 때 강제하거나 처벌하는 조항은 사실상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대 말을 더 듣고 합의하라는 취지일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생도 종료 시점은 정해두고 토론한다. 여야가 제헌절 전에는 어떻게든 협상을 마무리짓겠다고 11일 합의했지만 그래도 50여 일을 논 셈이다. 세상에 이런 직장이 있나. 의원 세비를 깎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의원들은 안 나온다는데 취재기자는 왜 나가야 하나”라는 질문을 받고 “그 부분은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의원들이 다음 총선 준비에 열심인 까닭은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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