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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장군 진급 포기한 ‘탑건’ 대령의 사명감

bindol 2022. 7. 18. 03:58

[동서남북] 장군 진급 포기한 ‘탑건’ 대령의 사명감

영화 속 주인공은 만년 대령… 진급 못해도 항상 본분에 충실
일에서 의미·보람 찾을 수 있게 직무환경 다시 설계해야

입력 2022.07.18 03:00
 
 

36년 만에 속편을 만들어 화제가 된 미국 영화 ‘탑건 매버릭’을 두고 “기계가 인간을 대체해가는 시대 아직 어림없다 외치는 사자후” 같은 갖가지 호평이 줄을 잇는다. 그중 눈길을 끈 문구는 “본분에 충실한 ‘장포대’를 위한 헌사”였다. ‘장포대’는 우리 군(軍) 은어 중 하나. ‘장군을 포기한 대령’을 줄인 말이다. 장군 진급에서 연거푸 탈락한 뒤 정년 퇴임(예편)만 기다리는 대령을 뜻한다. 어감에서 느껴지듯 ‘장포대’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계급은 높지만 이미 미래를 포기한 탓에 대체로 업무에 관심이 없고 상부 통제도 잘 안 먹힌다. 오래전 병사로 복무하던 시절 사단 사령부에는 사단장(소장) 아래 부사단장(대령)이 2명 있었다. 각각 작전·행정 부사단장. 둘 다 ‘장포대’였다. 출근하면 주로 독서와 낮잠, TV 시청으로 일관하다 ‘칼퇴근’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직위상 사단 내 ‘넘버 2′라 넓은 사무실과 관사는 물론, 당번병·관사병·운전병을 따로 뒀다. ‘짬밥’은 오히려 사단장보다 많아 사단장도 함부로 어쩌지 못했다.

‘탑건 매버릭’ 의 한 장면 .주인공 피트 미첼 대령(배우 톰 크루즈)이 전투기로 출격하고 있다. [파라마운트 픽쳐스]
 

‘탑건 매버릭’ 주인공 피트 미첼 대령(배우 톰 크루즈)도 ‘장포대’다. 동기생들은 오래전 장군으로 진급해 상급 부대 지휘관으로 있고, 직속 상사들도 군 경력으로 따지면 후배들이다. 그러나 그는 계급 지위가 주는 제약과 한계에 연연하지 않고 조종사라는 업(業)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에 옮긴다. 위험한 작전에 자원하고 후배 조종사들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다. 상관이 “언젠가 조종사는 (무인 비행체가 나오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하자, 그는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죠(Maybe so, sir. But not today)”라고 받아친 뒤 조종간을 다시 잡는다.

미 사회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일을 생업(job)과 직업(career), 소명(calling)으로 나눈다. 그러면서 한 대학병원 관리인 루크 사례를 전한다. 루크는 건물 청소나 시설 개·보수가 공식 업무. 아파트 경비원과 비슷하다. 어느 날 그는 6개월째 혼수상태인 청년이 누워있는 병실을 청소하고 나왔다. 그 순간 청년을 간병하던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고 착잡한 표정으로 들어오다 루크와 마주쳤다. 대뜸 “왜 청소를 안 해주냐”며 짜증을 냈다. 루크는 억울했지만 따지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청소하겠습니다”라고 답하곤 이미 청소한 병실을 그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다시 치웠다. “그분 심정을 이해합니다. 모든 게 원망스럽고 힘들겠죠. 그분 기분이 좀 나아진다면 청소 한번 더 하는 게 뭐 어렵겠어요.”

 

슈워츠는 루크가 ‘소명’이 뭔지 이해하고 있다고 봤다. 병원 ‘관리’란 공식 직무 너머에 있는, 병원 직원이 가져야 할 본질적 직무, “환자와 가족들이 병마에서 벗어날 수 있게 최대한 돕는다”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가 이렇게 시키지도 않은 일을 기꺼이 할 수 있었던 바탕엔 재량권과 자발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직장 문화도 한몫했다고 한다.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잊는다. 그저 돈벌이를 위해 참고 하는 일이라면 은퇴할 날만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미첼 대령이나 루크처럼 의미나 보람을 찾아내지 못하면 직장은 그저 전쟁터이자 지옥일 뿐이다. 그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일이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성찰하고, 책임을 다한다는 게 어떤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회사 역시 직원들이 이런 가치를 깨닫고 성취감을 느끼면서 일하게 하려면 직무 환경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