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56] 씻김굿의 누룩
씻김굿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하였다. 우리 사회에 악감정이 많이 쌓여 있어서 거의 한계치에 도달하지 않았나 싶다. 분노, 증오, 상처를 씻어 주는 게 씻김굿의 목적이다. 살아생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었으나 해보지 못한 한(恨), 꼭 한번 가져보고 싶었으나 가져보지 못한 한을 씻어내야 한다. 이걸 털고 가야 한다. 그러나 이걸 어떤 방법으로 털어낸단 말인가! 방법이 문제다. 아마도 수천년 세월 동안 경험이 축적되면서 고안된 방법이 씻김굿이 아닌가 싶다.
씻김굿이야말로 한국 무속신앙의 핵심이다. 우선 죽은 사람의 옷을 대나무 자리(또는 돗자리)로 둘둘 말아서 그 댓자리를 세운다. 이걸 ‘영돈말이’라고 한다. 영혼을 댓자리로 둘둘 만다는 뜻이다. 댓자리는 끈으로 7군데를 묶어 놓는다. 7번은 죽어서 북두칠성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다. 세워 놓은 댓자리 위에는 누룩을 놓는다. 누룩을 놓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누룩 위에는 또아리(똬리)를 얹어 놓는다. 또아리 위에는 밥그릇을 놓는다. 그 밥그릇 속에는 인체의 모양으로 오려 놓은 한지(韓紙)를 넣어 둔다. 사람 모양 한지는 죽은 자의 넋(영혼)을 상징한다. 그 밥그릇 위에는 솥뚜껑을 올려놓는다. 그 다음에는 솔잎이 달린 소나무 가지로 물을 찍어서 댓자리에 바른다. 향물(향나무를 쪼개서 담가 놓은), 쑥물, 맑은 물 등 세 가지 물이다. 조그만 사발에 담겨 있는 세 가지 물을 돌아가면서 솔잎가지로 찍어서 죽은 자의 넋이 담겨 있는 댓자리에다가 바르는 행위이다. 이 과정을 ‘이슬털이’라고 부른다. 씻김굿의 여러 과정 중에 이슬털이 과정이 가장 하이라이트이다.
그런데 왜 여기에 누룩이 들어갈까? 진도(珍島) 씻김굿을 오랫동안 연구한 민속학자 이윤선(59)은 저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축제’에서 죽은 자의 넋을 술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풀이했다. 누룩은 술을 만드는 원료이다. 증류소주를 만들 때에도 솥단지 뚜껑에서 이슬처럼 한 방울씩 떨어진다. 이슬털이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왔다고 본다. 이렇게 보면 죽은 자의 영혼을 술로 만들기 위해 상징적으로 중간에 누룩을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씻김굿은 죽은 자의 넋이 남긴 그 술을 산 자가 음복(飮福)하는 행위가 된다. 이 술은 죽은 자와 산 자를 이어주는 신비한 액체이다. 죽은 자의 생명이 산 자의 몸속으로 이어지니까 말이다. 좌파와 우파의 악감정을 풀어줄 씻김굿의 누룩은 어디에 있나. 부음정(孚飮亭)에서 술 한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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