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03] 도마에 오른 고깃덩이
우리는 보통 ‘도마’라고 풀이하지만 본래는 제기(祭器)였던 물건이 있다. ‘조(俎)’라는 글자로 적는 기물(器物)이다. 제사를 지낼 때 편평한 윗면에 고기를 올려놓도록 한 그릇이다. 나중에는 칼질할 때 밑에 받치는 ‘도마’의 뜻을 얻기도 했다.
그 위에 올린 어육(魚肉)을 ‘조상육(俎上肉)’으로 부른다. 제사상 그릇에 오른 희생(犧牲), 도마에 놓인 물고기나 가축의 신세를 일컫는다. 속뜻은 ‘어쩔 수 없이 남에게 휘둘리는 상황’이다. 자칫 모든 것을 빼앗겨야 하는 처지다.
흐름이 비슷한 성어가 많다. 우선 연못에 갇힌 물고기를 지중어(池中魚)라고 부른다. 작은 새집 속에서 지내는 새는 농중조(籠中鳥)다. 둘을 한데 묶으면 지어롱조(池魚籠鳥)다. 인신의 자유를 남에게 구속당한 사람을 일컫는다.
항아리 속의 자라도 마찬가지다. 한자로는 옹중별(甕中鼈)로 흔히 적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잡아먹혀야 할 운명인 존재를 가리킨다. 주머니에 있는 물건이라는 뜻의 ‘낭중물(囊中物)’도 마찬가지다. 언제든지 손에 넣을 수 있는 대상이다.
당하는 쪽은 속절없이 남의 먹거리 등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런 결과를 이끈 행위자는 상황을 마음껏 쥐락펴락하려는 ‘장악(掌握)’, 대상을 제 의도에 따라 묶으려는 ‘제인(制人)’으로 보는 듯한 언어다.
달리 이르자면 싸움을 다루는 병법(兵法)의 시선이자 사유다. 길고 모질게 이어온 전쟁의 역사에서 중국인들이 키운 사고의 뚜렷한 패턴이다. 그런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의 드센 대외 확장 정책을 펼친 결과가 요즘 나타난다.
중국의 자금을 받은 여러 나라가 중국에 꼼짝 못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는 소식이 잇따른다. 도마 위 어육, 연못 물고기, 주머니 속 물건 등의 신세란다. 중국의 노련한 속셈에 말려든 결과다. 그러나 누구를 먼저 탓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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