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6678)大乳女

bindol 2022. 10. 3. 05:42
[이규태코너](6678)大乳女 발행일 : 2005.11.23 / 여론/독자 A30 면
▲ 종이신문보기유럽에서 출토된 석기시대의 흙인형(土偶)들은 젖통이 과장되었다는 데서 공통되고 있다. 유방 크기가 전 인형 체적의 반을 넘게 조각된 것으로 미루어 대유(大乳) 숭배시대가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대유는 풍년과 직결되기에 대유 숭배가 자생했음 직하다. 우리나라 농가에서 감자류나 고추 등 많은 결실을 바라는 채소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할 때는 그 마을에서 유방이 제일 크거나 아들 딸을 많이 낳은 여인을 곱으로 품을 사서 시켰던 관행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큰 젖통의 긍정적 이미지는 인류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루이16세의 술잔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유방을 본떠 만든 것으로, ‘미로의 비너스’의 유방과 더불어 미인 콘테스트의 기준이 되고 있으며 100만달러의 보험금이 걸렸던 소피아 로렌의 유방이나 풍만한 젖가슴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마릴린 먼로의 유방도 이에는 못 미쳤다. 철학자 헤겔은 유방의 미는 크기에 있는것이 아니라 균형에 있다 하고 큰 유방에의 선망은 다산을 바라는 주술적 잠재원망에 기인한다고 했다. 방랑 끝에 형님을 찾아가 구걸하는 흥부에게 놀부가 물었다. 그동안 애를 몇이나 두었느냐고…. 스물넷이라고 하자 흥부 여편네를 연상하고 “고년 젖통이 엉덩이만 하더니…”하고 다산을 큰 유방에 합리화한다.

‘대유=다산’은 역사적 사실로도 드러나 있다. 함경도 북변 국경지방에 보릿대로 고리짝을 만들어 생계를 잇는 재가승촌(在家僧村)이 있었다. 여염과 통혼하지 않고 소외당한 채 살아내린 이 재가승촌의 내력에 대해 한말의 민속학자인 이능화(李能和)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가 강화조건으로 젖통이 큰 대유녀 3000명을 차출, 청 태조의 고향인 한만 국경지방인 영고탑(寧古塔) 인근에 이주시킴으로써 인구번창을 노렸던 바로 그 후예들의 잔존이라 했다. 이 대유녀 차출을 면하고자 유방을 억세게 조여 맬 수 있게 하는 말기치마가 생겨났다는 속설도 있다.

우리나라 여성의 62%가 유방 콤플렉스에 걸려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한데 대유녀가 작은 유방의 여인보다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보고는 역사도 유구한 대유 선망문화에 최초의 반동이 아닐 수 없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