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캥거루 실업

bindol 2022. 10. 12. 06:09

[이규태 코너]캥거루 실업

조선일보
입력 2004.08.20 18:28
 
 
 
 

개성 천마산 능선에 거대한 바위 둘이 아슬아슬한 벼랑 위에 얹혀 있는 봉우리가 있는데 그 하나를 ‘안돌이바위’ 다른 하나를 ‘뒤돌이바위’라 한다. 옛 개성에서 10대만 되면 이 안돌이바위를 안고 돌고, 뒤돌이바위를 뒤돌아 담력을 공인받아야 품을 팔아도 반품을 받고 장가갈 자격이 주어졌으며, 농사공동체인 농청(農廳)이나 상인공동체인 상청(商廳)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곧 담력을 시험받는 것으로 부모의 응석받이로부터 단절, 사회의 일원으로 인생을 전환하는 계기가 민속적으로 보장돼 있었다. 서울 백운대 정상에는 결단암(決斷巖)이라 하여 조선조 초 수양대군과 안평대군도 뛰어넘어 성인으로 공인받았다는 1m50 남짓 폭의 균열된 벼랑바위가 있다.

부모의 그늘에서 사회의 양지로 인생전환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우리 전통사회에 강했던 부성원리(父性原理)를 들 수 있다. 아이의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무한 포용하여 감싸는 모정(母情), 곧 모성원리(母性原理)와 그 잘잘못을 끊고 맺음으로써 사회적 일원으로 자립시키려는 부정(父情), 곧 부성원리의 조화 속에 자라는 것이 이상적이다. 한데 유교문화가 지배한 한국 전통사회에서는 부성원리가 강하게 작용, 이미 10대 전반에 사회인으로서의 품격을 갖추게 마련이었다.
급격한 근대화과정에서 아버지의 힘이 거세당해 부성원리는 증발한 데다 가전(家電)제품의 보급으로 가사노동에서 해방된 어머니의 모성원리가 자녀의 과보호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캥거루 배주머니 속의 자녀들은 사회적 독립인간으로서의 골격을 형성시키지 못한 채 나이 30을 넘기고들 있는 것이다.

부모품을 떠나지 못하는 청년 백수들이 늘어난다는 통계보도가 있었는데 일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맞는 일자리가 찾아오길 바라는 것이 증가원인의 하나로 제시되기도 했다. 일정 수준의 보수와 사회적 인식에서 멀어진 일의 기피는 바로 가정과 사회가 단절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배 주머니 속의 백수 아닌 백발 캥거루가 나타날 날도 멀지 않았을 성싶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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