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파랑새

bindol 2022. 10. 13. 16:10

[이규태코너] 파랑새

조선일보
입력 2004.07.27 18:33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원주민 간에 ‘푸르다’라는 말이 없다 한다. 우리나라 말에서처럼 청(靑)과 녹(綠)이 구분돼 있지 않은 나라말도 많고ㅡ. 하늘 바다, 그리고 산천초목의 대자연이 푸른빛 일색이기 때문이란 설도 있고, 이 대자연을 제외한 소자연에는 희귀한 보석 말고는 거의 볼 수 없는 희귀색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그래선지 블루 다리아ㅡ 하면 극히 진기한 것을 뜻하고 푸른꽃ㅡ 하면 노봐리스의 작품에서처럼 꿈속에 나타난 동경의 상징이다. 파랑새는 마테를링크의 시극에서 잡히지 않는 행복의 상징이고ㅡ, 은요번(殷堯藩)의 ‘궁사(宮詞)’에 보면 중국에서는 파랑새 발에 편지를 매어 연인에게 애전(愛箋)을 주고받았다.

이에 비해 한국의 파랑새는 자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화신으로 이 보살이 현신한다는 세계 7대 보타락(補陀落) 성지 가운데 하나인 낙산(洛山) 관음굴에 나타난다. 고려 때 스님 익장(益壯)의 ‘낙산사기’에 보면 관음굴에 성심껏 기도하면 파랑새가 나타난다 하고, 고려 무신(武臣) 유자량(庾資凉)이 이 굴에 와 기도했을 때 파랑새가 꽃을 물고 날아와 머리 위에 뿌렸다 했다. 조선조 광해군 연간에 이 낙산 관음굴에 전각을 짓고 상량할 때 파랑새가 날아와 누볐다고도 했다. 내설악 오세암(五歲庵)의 창사설화에서도 파랑새는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현신한다. 다섯 살 난 아기가 홀로 눈에 갇혀 겨울을 나는데 이듬해 해동할 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기적이 일어났다. 알고 보니 매일 흰옷 입은 여인이 나타나 아이를 보살피고는 낙산 쪽으로 파랑새가 되어 날아가곤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원효대사가 이 낙산을 찾아가는데 두 연인으로 변신한 파랑새로부터 신앙 시련을 겪는다. 그 시련에 실패하자 파계승이라고 지저귀며 파랑새 되어 날아갔다 했다. 곧 신앙을 경계하는 파랑새이기도 하다. 그 희귀한 파랑새가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의 한 나무에 둥지를 틀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동남아시아의 철새로 온난화 타고 북상한 파랑새 1호가 아닐까 싶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상징하거나 나라 돼 가는 것을 경계하는 출현같기도 하고ㅡ.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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