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이라크의 還鄕女
병자호란 때 오랑캐는 전리품으로 조선 남녀들을 끌고 가 심양(?陽) 남변문(南?門) 밖에 노예시장을 벌이고 팔았다. 노동력으로 또는 처첩으로 팔려가 계약 시한을 채우고는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이렇게 돌아온 여인을 환향녀(還鄕女) 또는 쇄환녀(刷還女)라고도 했다. 한데 이 돌아온 여인을 상민이나 천민은 반갑게 받아들였지만 양반 신분의 여인들은 거의 문 안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하여 문밖에서 울다가 발길을 돌렸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한 이상야릇한 한국적인 웃음을 ‘환향녀의 웃음’이라 하는데 바로 법도를 지키는 가문에서 전란에 납치돼 가 실절했을 어머니나 아내, 딸들이 문전에서 짓지 않을 수 없었던 기구한 웃음이다. 사무치게 보고 싶었던 그리움, 만나게 되어 설레는 마음, 실절한 데 대한 죄책감, 기구한 신세를 둔 한탄,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등등 복합감정으로만 지을 수 있는 한국적인 웃음이다. 그런 웃음을 지으며 동구 밖 정자나무에 목을 매거나 깊은 소(沼)에 몸을 던졌으며 더러는 만주 벌판으로 되돌아가 환향녀끼리 어울려 살았다. 지금 그 지역에 고려보(高麗堡)라는 지명이 많은데 바로 그 한많은 집단촌이다.
정권 이양과 더불어 미군수용소에 수감돼 있던 이라크 여성들이 석방되고 있는데 병자호란판 환향녀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처럼 가족이나 부족 명예에도 걸리지만, 그 이전에 이슬람의 계율에서 실절에 대한 가혹한 응징이 이라크 환향녀들에게 설 땅을 주지 않았다. 미군 병사들의 학대가 엎친 데 덮쳐 이 여포로들의 실절을 간음으로 간주, 투석형(投石刑)으로 다스리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이다. 광장 복판에 구덩이를 파 유방까지 묻고 군중으로 하여금 돌팔매질시켜 돌묻이를 하는데, 맨 먼저 그 여인의 아버지가 돌을 던지는 게 관행이다. 처참한 이 공개형이 두려워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또 돌아가도 가족이나 부족에게 미리 살해당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370여년 전의 인간 비극이 재현되고 있으니 ‘그간에 인류문명의 어느 무엇이 발달했다는 말인가’ 하고 역사의 문을 주먹으로 피가 튀도록 치고 싶은 심정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이규태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규태코너]내부고발 제도 (0) | 2022.10.13 |
|---|---|
| [이규태코너] 제2의 해인사 (0) | 2022.10.13 |
| [이규태코너] 세 발 까마귀 (0) | 2022.10.13 |
| [이규태코너] 소외 살인 (0) | 2022.10.13 |
| [이규태코너] 파랑새 (0) | 2022.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