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소외 살인

bindol 2022. 10. 13. 16:11

[이규태코너] 소외 살인

조선일보
입력 2004.07.19 18:27
 

아프리카 야생동물계에서 가장 무서운 짐승 하면 사자를 연상하겠지만, “가장 약한 짐승이 가장 두려운 짐승”이라는 케냐 야생공원 감독관의 말이 생각난다. 비단 맹수뿐 아니라 모든 짐승에게 쫓겨다니기만 하는 임팔라 사슴이 바로 그 가공할 만한 존재다. 약육강식의 아프리카 황야에서 집단 행동하는 임팔라 사슴 떼가 유유자적하고 있는 인근 100~200m 이내에는 반드시 사자 한 마리가 누워 있게 마련인데 이 사자 때문에 다른 짐승들이 접근하지 못한다. 노쇠하거나 병든 임팔라 사슴 한 마리가 정기적으로 사자에게 잡아먹힘으로써 배고프지 않은 사나흘 동안 그의 위력 아래 집단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임팔라 사슴이 두려워지는 것은 이 집단에서 소외당해 외톨박이로 유랑할 때다. 이 소외당한 임팔라는 만나는 짐승이 맹수이건 아니건 불특정 대상에게 가시 돋친 뿔을 무기로 저돌적인 선제공격을 한다. 이 맹렬 돌격에 그 육중한 코끼리도 멀리서 보고 피하고 사자도 외면한다는 것이다.

집단으로부터의 소외가 얼마나 가공할 반동으로 나타나는가 동물심리 측면에서 입증하는 임팔라 사슴이 아닐 수 없다. 살인 사례를 수집 연구한 콜린 윌슨은 살인범죄의 단계를 머즐로의 인간 욕구단계의 발전에 비유했다. 먹고 입고 사는 생존욕구가 충족되면 갖고 싶은 소유욕구로 발전하고, 갖고 보면 즐기고 싶은 존재욕구가 생기며, 다시 알려지고 싶은 명예욕구로 발전한다는 것이 머즐로의 학설이다. 범죄도 먹고살지 못해 범하는 단순범죄에서 힘 안 들이고 갖고자 하는 강도성 범죄로, 다시 재물과는 아랑곳없이 재미를 보고자 하는 성범죄로, 다시 뛰어넘어 명예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끔찍한 범죄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싶은 충동범죄를 저지르거나, 자신을 소외시킨 불특정 다수에게 원인 모를 연쇄살인을 하여 증오를 불태우고 세상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이중효과를 노리는 등이 명예범죄다. 명예의 반대개념이 소외이기 때문이다.

이유 모를 불특정 대량 연쇄살인범의 검거로 안개 속에 가린 살인동기를 가늠하는 실마리로 임팔라 살인을 유추(類推)해 본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