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식물유전 조약

bindol 2022. 10. 13. 16:19

[이규태 코너] 식물유전 조약

조선일보
입력 2004.07.11 18:17
 
 
 
 

사막국가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요,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 구리온은 사막의 정복 없이 이스라엘의 미래는 없다라며 총리, 국회의원직 등을 사임하고 네게브 사막에 들어갔다. 그곳에 벤 구리온 대학을 세워 사막농업을 개발하고 있는 현장에 들러본 일이 있었다. 그 사막농장에 열린 복숭아 하나를 따 주기에 먹어보았다. 생김새가 우리나라 개복숭아 같은 그 사막복숭아를 한 입 씹어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토록 감미가 진한 과일을 먹어본 일이 없다 할 만큼 달았기 때문이다. 충격받는 얼굴을 보고 연구원이 말했다. 사막의 과수는 염분을 품은 지하수와 싸워 이겨야 하기에 여느 담수로 자라는 열매보다 한결 달지 않을 수 없으며 지하수의 염분과 감미는 정확하게 비례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양새가 한국의 들복숭아 같다고 했더니 삼중(三重) 유전자 교배로 얻어낸 복숭아로, 그중에는 중국 동북부의 야생 복숭아도 끼여 있다 했다. 곧 한국 야생종의 유전자가 불모의 사막에서 각고의 승리를 거둬낸 셈이다. 역경에서 인생이 성숙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사막복숭아가 대변한 것이기도 하다.

지금 과잉생산으로 수지가 형편없어진 제주도의 귤나무 대신 대체작물로 뉴질랜드의 키위를 옮겨 심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데 따지고 보면 키위는,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랏다’고 조상들이 읊었던 중국 동북지방산 다래를 20세기 초 뉴질랜드에 옮겨심어 유전자 교배를 거듭한 끝에 1930년에야 재배에 성공한, 한국 다래의 금의환향인 것이다. ‘chinensis’라는 학명이, 같은 유전자 족보임을 말해준다. 이처럼 식물유전자의 교류는 전에 없던 방대한 식물자원의 다양화와 양산을 초래하는 계기가 되며 특히 불모의 고위도(高緯度) 식물들을 생명력이 왕성한 중위도(中緯度)의 한반도에 들여와 유전자 처리했을 때 얻어질 자원은 막대한 것이다. 지난주 유럽연합을 포함, 55개국이 가입한 식물유전자원조약(植物遺傳資源條約)이 체결되었다던데 이 국가 규모의 벤처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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