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푸른 장미

bindol 2022. 10. 15. 11:04

[이규태코너] 푸른 장미

조선일보
입력 2004.05.24 18:46
 
 
 
 

장미에는 홍장미와 백장미밖에 없음을 두고 시인 브라운은 “순결 아니면 정열뿐 그 밖의 어떤 선택도 완강하게 거부하는 여인의 본질…”이라고 읊었다. 황장미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은 1864년의 일로 파리의 한 장미시험장에서의 일이다. 25만그루의 비황색 장미에 인공으로 수분(受粉), 5만달러를 들여 노랑으로 변색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하여 장미꽃 색을 22가지나 달리해 놓았지만 유독 푸른 장미만은 변색을 완강하게 거부해 왔다. 이미 로마의 화신(花神)인 플로라가 그의 연인인 숲의 요정을 장미로 환생시킬 때 ‘차갑고 우울하며 죽음을 암시하는…’ 푸른 장미만을 제외시키더니, 그 저주의 연장인지 모르겠다.

장미뿐 아니라 자연계에서 푸른색은 극히 희귀하다. 그래서 노발리스의 ‘푸른 꽃’은 꿈속에만 나타나는 동경의 상징이요,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는 잡히지 않는 행복의 싱징이고 원효대사를 유인한 파랑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일 뿐이다. 영어로 ‘블루 달리아(blue dahlia)’가 극히 진귀하다는 뜻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60년 미국 일리노이의 식물학자 조지 스미스는 특정 작물에 특정 음악을 들려줌으로써 꽃 빛깔이 달라지는 실험에 성공하고, 하얀 장미에 기쁘고 슬프고 우울한 음악들을 들려주었다. 한데 우울한 음악만을 들려준 백장미군(群)에서 약간의 푸른 변색 기운을 감지했다. 영어에서 우울하다는 형용사가 ‘블루’인 것에 과학적 맥락이 있다는 자연계 비밀의 발견과 더불어 유사(類似) 푸른 장미를 만들기는 했다. 20여년 전에는 케임브리지 유전공학연구소에서 유전자 분리로 푸른 장미를 만드는 데 성공은 했으나 실험실 밖에서 번식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보도된바로 미국 밴더빌트대학에서 치매약을 개발하던 연구진이 우연히 푸른빛 박테리아를 발견, 그 유전자로 푸른 장미를 피우는 데 성공했다 한다. 명종 때 문헌에 보면 우리나라도 백모란을 연분홍색으로, 다시 연분홍색을 자주꽃 색으로 바꾸는 등 육종 토속방이 꽤나 발달했음으로 미루어 꽃색 바꾸는 전통문화를 첨단 유전공학과 접목시키는 데 눈을 돌렸으면 한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