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을 맞추어 소시(小詩) 14수 지어 (그를) 보냈다
- 因以爲韻, 作小詩十四首送之 · 인이위운, 작소시십사수송지
백부는 ‘내 아버지가 과거에 낙방하여 촉으로 돌아갈 때 배웅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인적이 드물어 노점은 한가로이 쉬고 있고 길이 영관으로 접어들어 편안히 노새를 탔다.” 나는 안절이 떠나갈 때 이 구절을 노래하고 운을 맞추어 소시(小詩) 14수를 지어 (그를) 보냈다.
伯父 ‘送先人下第歸蜀’ 詩云: 人稀野店休安枕, 路入靈關檼跨驢. 安節將去, 爲誦此句, 因以爲韻, 作小詩十四首送之.(백부 ‘송선인하제귀촉’ 시운: 인휘야점휴안침, 노입령관은과려. 안절장거, 위송차구, 인이위운, 작소시십사수송지.)
위 문장은 우리나라의 국사편찬위원회에 해당하는 중화서국(中華書局)이 1982년 펴낸 ‘소식시집(蘇軾詩集)’ 1098면에 실린 내용이다. 백부는 작자인 동파(東坡) 소식(1036~1101)의 큰아버지인 소환(蘇渙)을, 선인(先人)은 소식의 아버지인 소순(蘇洵)을 가리킨다. 안절은 소환의 둘째아들 불의(不疑)의 아들로, 소식의 조카이다. 안절은 사천에서 와 시험에 응시한 뒤 황주(黃州)에 도착해 소식을 보고자 했다. 소순(1009~1066)은 27세 때 진사(進士) 시험에 낙방했다. 그때 소순의 형님인 소환이 낙방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동생을 위로하며 시를 읊었다. 그런데 소환의 손자가 시험을 본 뒤 황주에서 소식을 만났다.
소식은 안절이 떠날 때 그의 할아버지 소환이 읊은 시를 노래하며 차운하여 시 14수를 지어 배웅한 것이다. 소식이 황주에 있을 때면 그가 그곳에서 유배를 살 무렵일 것이다. 당시 정치적 실세였던 왕안석의 개혁정책인 신법(新法)이 실시됐다. 구법당(舊法黨)에 속했던 소동파는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하여 신법(新法)을 싫어했으며, “독서가 만 권에 달하여도 율(律)은 읽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일로 항주로 유배를 간 것이다.
소순은 시험에 낙방한 후 관리가 되는 것은 단념하고 저술에 힘썼다. 그의 글이 구양수의 인정을 받아 조정에 나가 북송 이래의 예(禮)에 관한 여러 글을 모은 ‘태상인혁례(太常因革禮)’ 100권을 편찬했다. 소순과 아들 소식·소철(蘇轍)은 삼소(三蘇)라 불렸다. 소순을 노소(老蘇), 소식을 대소(大蘇), 소철을 소소(小蘇)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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