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岳麓 書院
조선시대의 유생들이 성지로 여겨온 곳이 취푸(曲阜)에 있는 공부(孔府)와 주자가 가르친 장사의 악록서원이다. 천년 역사의 그 서원에서 유구한 전통 교육방식을 현대에 접목해 10명 안팎의 박사학위 과정을 전 세계에서 모집키로 하여 국내외에서 지망생이 쇄도하고 있다 한다.
서원의 중심 건물인 강당의 좌우 벽면에 절(節) 효(孝) 충(忠) 염(廉)이라는 주자사상을 집약시킨 등신대의 붓글씨가 붙어 있는데, 주자의 친필이다. 그 강당에 들면 복판에 나무의자 두 개가 놓여 있는데, 하나에는 주자가 앉고 다른 하나에는 악록서원 원장인 호남학파 거두 장식(張?)이 앉아 그 유명한 ‘주장회강(朱張會講)’이라는 세미나를 주재했던 현장을 보존하고 있었다.
과거를 치러 가는 서생들이 멀리 이곳까지 와 주자가 앉았던 나무의자에 앉으면 그 식견이 전도되어 급제한다고 소문나 나무의자가 닳을 지경이라 손을 대지 말라는 ‘청물촉수(請勿觸手)’라는 방이 붙어 있었다. 그 강당 뒤로 돌아가면 백천헌(百泉軒)이라는 당호의 집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주자가 기거했고 집앞에 주자의 먹물을 댄 문천(文泉)이란 샘이 있는데, 이 서원 서생 아니고는 이 물로 먹을 갈 수 없는 유구한 전통이 있으며 서원 입구에서 이 문천 물을 오지병에 담아 팔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근대까지도 중국의 수위학부로 명맥을 이은 악록서원 출신으로 모택동(毛澤東), 증국번(曾國蕃), 그리고 한국에 와 묄렌도르프와 함께 한국 개화를 도왔던 양계초(梁啓超)도 악록서원 출신들이다. 주자의 학문과 행실을 한국에 수혈한 한국 유학의 비조(鼻祖) 안유(安裕)는 주자의 화상을 모시고 주자의 호인 회암(晦菴)과 같은 항렬인 회헌(晦軒)으로 호를 삼았을 정도다.
고려말까지만 해도 백일상이던 부모상을 주자가례에 따라 3년상으로 의례개혁을 한 것도 안유다. 그후 정몽주, 이이, 이황, 김굉필, 조광조로 주자 수혈의 한국 도학전통을 이어 유학의 본고장인 중국보다 싱그러운 유과(儒果)를 열매 맺기에 이른 것이다. 그 전통을 접목시키기 위해서라도 악록서원에 한국 유학생이 가야만 할 줄 안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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