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孝不孝主義
어느 문명권이건 인간이 욕망대로 사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쾌락주의와 욕망을 억제하는 데 가치를 부여하는 금욕주의가 대립해 왔다. 희랍에는 쾌락과 행복을 동일시한 에피쿠로스의 쾌락철학이 풍미했었고, 로마 멸망시기에는 에피쿠로스 동산을 만들어 육체적 향락으로 지새우다 그곳에서 죽기까지 했다.
제 명대로 살아야 60인데 사로병고(死老病苦)와 근심걱정 없는 날은 한 달에 사나흘이 고작이라 하고 욕망추구를 부추긴 것은 장자(莊子)요 그의 뜻을 양주(楊朱)가 승계했다. 하지만 기독교의 모태가 된 히브리즘이 헬레니즘을 압도하고 유교사상이 장주(莊朱)사상을 압도했듯이 금욕문화가 우위를 유지해온 것이 세상에 공통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쾌락주의가 행세를 했던 역사시기가 없었던 것 같지만 후세 사가들이 쾌락을 악덕시하여 은폐하거나 왜곡시켰을 따름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흥륜사의 전탑(殿塔)돌이에서 경주의 사녀들이 탑을 돌면서 눈만 맞으면 으슥한 수풀 속에 들어가 육체적 쾌락을 즐겼다. 신라 진지왕은 여염의 도화녀(桃花女)와 야합하여 비형(鼻荊)을 낳았고, 진성여왕은 유모의 남편인 외간남자 위홍(魏弘)과 스스럼없이 정사에 빠져 국사를 외면했다.
구애(求愛)의 노래를 부르고 다니던 원효대사와 요석궁 공주가 야합한 것도 방탕해서가 아니라 그만한 욕망 충족은 악덕이 아니었던 신라의 가치관을 엿보게 하는 잔재들이다. 이 원효대사의 정사가 유교(楡橋)에서 이루어졌고 귀교(鬼橋)가 도화녀와의 정사에서 비롯됐듯이, 이 말살당한 신라 쾌락주의는 경주의 다리들에 그 여명(餘命)을 기생시켜 내렸다.
경주 문천(蚊川)에 걸렸던 길이 55m의 대형 석교 효불효교(孝不孝橋)의 교각들이 발굴되어 원형을 복구할 수 있게 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어머니가 정부를 만나고자 밤마다 물길 건너며 고생하는 것을 보고 일곱 아들들이 놓아드린 다리라 해서 어머니에게는 효도요 아버지에게는 불효라 하여 얻은 이름이다. 효불효는 후세의 문화포장이요, 그만한 정사는 자식들이 동조하리만큼 자연스러웠던 신라 쾌락주의요, 신라의 다리들은 이렇게 해서 사상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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